정문재 /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참모들의 충성에 매달리다
국민들의 믿음을 잃어버려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권력 유지 및 강화도 가능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자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통령은 그저 '나는 결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

리처드 닉슨 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결정을 수긍하지 못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셔먼 애덤스(Sherman Adams)의 수뢰 사실이 드러나자 아이젠하워는 즉시 셔먼을 내쳤다. 닉슨은 백악관이나 행정부를 끌고 가려면 참모들의 충성은 필수라고 여겼다. 그는 웬만한 허물은 덮어줘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젠하워는 달랐다. 부하들의 충성보다는 국민들의 신뢰가 먼저였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셔먼을 해임했다. 셔먼은 섬유업자로부터 고급 코트 한 벌과 작은 카펫 하나를 받았다가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재판을 통해 유죄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경질 조치를 취했다.

셔먼의 퇴진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었다. 셔먼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대통령과 면담 기회를 가지려면 먼저 그의 허락부터 받아야 했다. 셔먼은 고위 관료 인선 과정에서 검증 업무까지 맡았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 가운데 가장 큰 파워를 행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아이젠하워는 백악관 입성과 함께 보좌진의 권한을 확대했다.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도 신설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조직 운영 방식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장군으로 진급하기 전까지 상당 기간 동안 참모나 교관으로 근무했다. 참모의 보좌 기능을 강화해야 대통령이 원활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젠하워는 고뇌했다. 셔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데다 많은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셔먼은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뉴햄프셔 주지사를 그만두고 대통령 선거운동본부장을 맡았다. 백악관에 들어온 후에도 6년간 한결같이 아이젠하워를 위해 헌신했다. 아이젠하워는 직접 해임을 통보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오른팔을 자른 덕분에 아이젠하워는 위기를 극복했다. 신속한 경질 조치는 대통령의 결연한 청렴 의지로 해석됐다. 비판 여론은 이내 잦아들었다.

닉슨은 아이젠하워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닉슨은 참모들의 충성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불과 33세의 해군 장교가 하원의원에 이어 상원의원, 부통령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것도 참모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닉슨은 참모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대신 그들을 싸고돌았다. 닉슨과 참모들은 봉건시대의 군신(君臣) 관계를 연상케 했다. 참모라기보다는 가신(家臣)에 가까웠다. 가신들은 나라보다는 닉슨을 위해 충성을 바쳤다. 이들은 '대통령의 개'라고 불릴 정도였다.

대통령만을 위한 충성은 사달을 일으켰다. 닉슨의 참모들은 197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선거본부에 불법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적발됐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다.

닉슨은 불법 도청 사건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홀드먼 비서실장이 불법 도청 적발 사실을 보고하자 닉슨은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지시했지?"라고 되물었다. 닉슨은 홀드먼에게 즉시 사건을 은폐하라고 명령했다.

닉슨은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았다. 그것을 참모들의 충성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겼다. 닉슨과 참모들은 어느새 공범으로 전락했다. 사건 은폐를 위해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증거를 감췄다.

닉슨과 참모들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닉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사임했고, 홀드먼을 비롯한 '대통령의 개'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향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 인사들도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다. 반면 청와대는 의혹만으로 사퇴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무적 측면에서의 사퇴 공세에 대해서도 완강한 자세다. 청와대는 오히려 대통령과 정권 흔들기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핵심 참모의 사퇴는 집권 후반기의 권력 장악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파괴력은 그 이상이다. 신뢰를 잃은 권력은 이내 무너진다. 권력은 바로 국민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가 아이젠하워와 닉슨의 운명을 갈랐다. 국민이 믿으면 권력은 강화되고, 국민이 신뢰를 철회하면 권력은 무력화된다.

참고문헌
1) 리처드 뉴스타트 지음. 이병석 옮김. 2014. 대통령의 권력. 다빈치
2) 차르 파버 & 리처드 파버 지음. 김형곤 옮김. 2003. 대통령의 성적표. 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