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삼 l 재중동포 자유기고가

중국 북방에 자그마한 조선족마을이 있다. 이 마을 한복판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멀리서 보면 고작 시야를 가린 집들의 지붕너머에 푸르게 얹혀있어 작은 나무로 보이지만 정작 그 밑에 가보면 그래도 꽤나 큰 덩치다. 몇 십년은 잘 자랐을 듯싶은 이 나무는 ‘혁신툰’이라고 하는 이 마을의 가장 로호(老戶)라고 하는 종식이 할아버지가 집터를 잡은 후 떠다옮긴 나무라고 한다.

종식이네가 삼간집을 짓고 살 때 몇번 와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이미 느티나무가 클 대로 커서 마당의 한 귀퉁이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식구가 많은 종식이네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 때문에 마당에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느티나무도 사람과 함께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한층 더 높아지는지 그저 빈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보다는 한결 생기를 띄고 있는 것 같았다. 종식이네 집 살림의 상징이어서 느티나무에서도 생활의 훈향(薰香)이 풍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외롭다. 뭇나무들이 없이 혼자 서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한국나들이와 연해도시 진출로 이사를 가서 사람이 살지 않는 종식이네 삼간집은 벌써 무너져 공터가 된 것은 말할 것 없고 길을 따라 줄 맞춰 지어진 아담한 벽돌집들조차도 문이 꽁꽁 닫힌 채,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해서 전에 마을에 주민들이 많이 모여살 때 피서하는 주민들은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이며, 한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다. 70 세대가 넘게 살던 마을에 지금 ‘툰장(이장)’을 맡은 단 한세대만이 살고 있다.

느티나무의 주인인 종식이네도 종식이 할아버지는 벌써 세상을 떠나고 종식이 아버지는 저 멀리 청도의 어딘가 가서 음식점을 하면서 종식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갔는데 지난해는 고향에 온다고 하더니 이젠 80세 고령이 되어 먼 길 오지 못하나보다.

한국에서 돈 벌어와 고향에 살겠노라 큰소리치던 종식이도 이제 한국에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설사 돌아온다고 한들 이 마을에 남아 계속 살 것인가? 가까운 이웃이며 친지들마저 모두 떠나버렸으니 고향이라 찾아와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다만 발목이 흙에 잡혀 떠날 줄 모르는 느티나무만 옛 주인을 알아보고 반가워할는지… 하긴 느티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간 것을 보면 혹여 다시 돌아와 살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이라도 놓아두고 떠난 것인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느티나무는 분명 종식이네가 고향에 남긴 기념이요, 선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혹시 마을이 타 민족에 팔려나가면서 고향의 역사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살게 된다면 임자야 누구든 나무를 베어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래된 느티나무가 스스로 말라죽어 부득이 베어버려야 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마을은 존재해도 느티나무는 더는 존재할 수 없으리라. 하면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 될까?

그런 특수한 운명을 지닌 나무여선지 나는 매번 이 마을 옆에 있는 큰 길을 따라 자전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 갈 때면 느티나무를 꼭 한번씩은 바라본다. 여름이면 푸른빛을 늦가을과 겨울, 이른 봄엔 갈색의 빛을 띤 느티나무…때로 일부러 마을에 들려서 느티나무 그늘아래 한참씩 서서 생각에 잠기며 떠나간 종식이네 식구들과 마을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느 한번은 일부러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이 한그루 느티나무를 렌즈에 담기도 했다. 산에 가면 어느 곳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느티나무이고 내가 사는 마을의 느티나무도 아니지만 저 느티나무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왜일까? 저 동구 밖에 서 있는 한 그루 외로운 느티나무를 볼 때마다 그 옛날 내가 살던 마을의 그 느티나무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반툰’이라고 하는 그 마을은 압록강수풍발전소가 서면서 수몰지가 되어 70세대가 일곱개 반으로 나뉘어 집단이민을 오면서 일반에 편성된 사람들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일반툰’이라고 하였는데 사질토에 물채가 좋아 들곡식, 밭곡식 모두가 잘 되는 살기 좋은 평안도 마을이었다. 그때 오씨라는 분이 산에서 느티나무 한그루를 떠다 마당에 옮겼다는데 오랜 세월과 함께 크면서 우뚝 솟아오른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상징이 되어 마을의 주요 행사를 알리는 종도 걸어 놓았다. 또한 잘 자라서 잎이 무성해 느티나무 아래는 마을의 휴식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면 처녀총각들의 밀회하면서 백년언약을 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한편, 영험(靈驗)하다고 하여 소원도 빌고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 달라 빌기도 하였는데 참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 불상사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일반툰’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일반툰’이 생산대 치고는 규모가 작아 ‘삼반툰’과 합치면서 ‘삼반툰’ 사람들의 일솜씨와 인품을 잘 아는 ‘일반툰’의 사람들이 ‘삼반툰’과 합치면 굶어죽는다며 하나 둘 이사를 가게 한 후 억지로 ‘삼반툰’과 합쳤는데 무리새가 굶어죽는다고 갑자기 많아진 마을주민들에 대한 관리가 따라가지 못해 첫해 농사가 폐농하다싶이 하여 하루 노동일 보수가 당시의 우표 한 장 값밖에 돌지 않으면서(인민폐로 0.08위안) 마을 전체가 빚더미에 앉게 되자 ‘일반툰’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서 마을이 통째로 해체되었다.

그때 얼마나 아쉽던지… 이삿짐을 싼 날 밤엔 전기도 없어 캄캄한 마을길을 오래오래 거닐다가 드디어 느티나무아래 가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사람들이 너도나도 떠나면 마을엔 빈집만 남을 것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곧이어 무너질 것이고 느티나무만 마을에 우두커니 남아있게 될 것이다. 천지개벽이 일어나 다시 사람들이 모여와 이 느티나무아래 다시 새로운 동네가 원상복구 될 것인가? 그때로 놓고 보면 그런 가능성은 전혀 있을 듯싶지 않았다. 그 후 마을이 해체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오로인의 자손들이 와서 베어가면서 마지막 남은 그 한그루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오늘 ‘혁신툰’의 이 느티나무도 언젠가 그런 운명을 맞지 않을까? 하면 내 고향 ‘일반툰’의 느티나무는 가난 때문에 마을이 폐쇄되면서 목을 잘렸다면 이 마을의 느티나무는 왜 사라져야 하는가? 호도거리 몇 해에 극빈한 가난은 해소되고 배불리 먹는 것 외에 그처럼 소망하던 초가집대신 벽돌집들을 보란 듯이 지어놓았는데도 왜 사람들은 정든 터전을 떠나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비록 손에 흙을 묻히고 초야에 엎으려 살지만 농사꾼들의 꿈은 결코 이밥에 배불리고 고깃국에 기와집만 아닌 것 같다. 더 높은 꿈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꿈이란 무엇일까? 농사꾼이라는 그 신분의 상승이 아닐까. 아무리 행복해도 필경 농사꾼은 농사꾼, 농사일은 고되고 천하고 농민들의 사회적 직위도 낮은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하여 농민이란 가장 낮은 계층에서 해탈하여 도시인처럼 문명을 향수하며 보란 듯이 살려는 욕망이 내면에 진지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제 우리민족들이 이 땅에서 논 다루고 밭 다루며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던 전원생활은 막을 내린 것 같다. 다만 사람과 함께 살면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사람의 소리를 듣던 느티나무만이 마을에 남아서 더욱 처량하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