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올해는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이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대한민국을 지지해온 재일한국인의 구심점으로 창립된 지 7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지난 세기 식민지 지배,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170여 개국에 약 720만명의 해외동포가 있다. 해외동포들은 지역별로 정주 경위가 다양하고 조국과의 연계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재일동포는 식민통치 과정에서 정착했고, 일본 사회의 단일민족 신화 속에 외국인으로 각종 멸시와 차별을 겪었다. 또한 한국에 가장 가까운 해외공동체로서 조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이런 요소들이 재일동포가 조국애와 조국 발전 기여 면에서 귀감이 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민단부인회 주관 행사에서는 늘 수백 명의 재일한국인 부인이 한복을 입고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재일한국인들이 왜 이국땅에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보이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주요 지방도시에 공관이 개설되자 어려운 삶 속에서도 대사관과 9개 총영사관의 거의 모든 용지 또는 건물을 기부했다.

외화가 부족해 참가가 힘들었던 1948년 런던올림픽 때 우리 선수단의 경비를 댄 것도 재일동포들이다. 조국이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1억달러를 헌금해 성공을 도왔다. 1997년 금융위기로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 본국 예금운동을 전개해 외환위기 극복에도 일조했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초기 많은 재일한국인 사업가가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우리를 도왔다. 유력한 시중은행으로 자리 잡은 신한은행도 재일동포들이 출자했다.

재일한국인이 한일 간 국교가 없었던 20년 동안 특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재일동포 사회를 대남혁명의 우회기지로 보아 학교 건립, 신용조합 설립 등을 통해 조총련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우리는 1965년 국교정상화가 돼서야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의 냉대 속에 취업 기회는 제한됐고, 사업을 하려면 힘든 귀화 절차를 밟지 않을 수 없는 악조건이었다. 남북 분단이 투영된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은 조총련에 대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은 압도적 다수를 점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한일 관계 개선, 본국 정부와 재일동포 사회의 법적 지위 및 처우 개선 노력, 한류 붐 등으로 일본 사회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일본 사회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기승을 부려 이에 대한 대책법이 제정될 정도로 재일한국인 멸시 풍조는 여전히 뿌리 깊다. 특히 재일동포는 한일 관계 악화 피해를 직접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한편 한국에서도 반일 감정의 희생양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한일 간 `경계인`으로 살아 왔다.

재일동포 사회는 이미 1세대가 물러나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2·3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일본인 배우자와 결혼이 급증하면서 자녀의 일본 국적 취득이 대세다. 조총련동포가 우리 여권을 취득하면서 급감하는 가운데, 수교 이후 한국에서 들어간 재일동포도 10만명을 넘었다. 이렇듯 다양화된 재일동포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할 민단도 외부환경 변화에 맞게 거듭나야 할 때가 됐다. 이제 민단은 다양한 구성원을 함께 아우르는 재일동포 사회의 `생활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일본 사회 주류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도 유독 재일동포에 대해서만 일본 국적 취득에 부정적인 태도를 바꿔야 한다. 국적 문제는 국가적 관점이 아닌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 또한 본국 정부도 다른 해외동포 사회와 달리 상당한 재정을 지원하고 있는 민단이 이런 방향으로 변화하고 개혁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열매를 거둘 때 재일동포들은 한일 간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민단 70주년을 맞아 우리도 재일동포 사회의 조국 사랑과 기여를 교과서에 기술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재일동포 사회에는 자신들의 헌신적 노력을 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의미가 있고, 본국에서는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재일동포들은 우리 근현대사의 불행을 이국땅에서 온몸으로 부딪혀 극복하여 오늘을 일궜다는 점에서 우리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소중한 존재다. 조국의 인정만큼 그들에게 값진 선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