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삼ㅣ재중동포 자유기고가

한 친구의 진갑잔치에 갔다가 나는 뜻밖에도 그 곳에서 감동적인 사연 하나를 듣게 되었다.

식을 마치고 축하공연이 진행될 때였다.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서 유독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춤을 추는 여인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한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여럿이 출 때도,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도 그 여인만은 사뿐사뿐 춤을 추는 것이 마치 춤에 굶주렸던 사람과 같았다.
헌데 춤을 추면서 이따금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그 여인으로써는 분명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환갑연에 참석한 저 여인은 참으로 기구한 인생경력을 가진 여인이라고 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6개월 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어쩔 수 없이 한족 집에 가서 자라게 되었는데 열한 살 되던 해에 그를 키워주던 양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고아가 되어 그녀는 또 자식이 없는 어느 도시의 한족 집에 입양되었다. 그러다 어느 한족 노동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한족 집에서 크다보니 음식은 물론, 옷마저도 모두 한족식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영화나 TV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조선족여인들의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동류의식이라고 할까? 피는 어찌해도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그래서 부럽다 못해 한번은 부모들더러 자기도 저런 옷을 해 입고 싶다고 했더니 평소에 살갑던 부모님들이 그렇게 노여워할 줄이야! 자식이 하나뿐이어서 무엇이든 해달라는 대로 하늘의 별도 따줄 듯 하던 부모님들이 왜 그 한마디에 그렇게도 화를 내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를 키운 부모님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족성은 말과 글, 그리고 음식뿐 만 아니라 입고 있는 옷에서도 잘 묻어난다는 것을.

때문에 그가 한복을 입음으로써 잠재되었던 민족성이 되살아 조선족에 더욱 가까워지다 못해 나중에 자신이 조선족임을 감안하고 제 민족을 찾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그렇게도 입고 싶었던 한복을 못 입어 애타하는 딸에게 한족부모들은 세상을 뜨면서 지금껏 감춰두었던 비밀을 그에게 다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너는 조선족의 후손이기에 언제든지 너의 혈육들을 찾아서 치마저고리도 마음껏 입어보면서 잘 살아라”라고 했던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엔가 남아있을 살붙이를 찾아 애타게 수소문한 끝에 끝내 어릴 때 헤어진 친척언니를 찾게 되었다.

그때가 마침 친척언니가 진갑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친척언니가 치마저고리를 마련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꼭 한벌 입게 해달라고 하여 친척언니가 특별히 찾은 동생을 위해 진갑 날 그녀가 입을 예쁜 한복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친척언니 진갑잔치에 수십 년 동안 소망했던 한복을 입게 된 것이 그리도 좋아 자꾸 춤을 췄던 것이다.

옷은 민족의 향기와 빛과 얼과 넋으로 자신의 민족에 대한 한 여인의 소박한 소망이었던 것이다. 비록 잘 추지는 못하는 춤이지만 그냥 추고 싶어 남들은 기진맥진해서 앉아 쉴 때도 오로지 그녀만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혼신을 다해서 추고 있었다.

기재에 의하면 한복은 멀리 삼국시대로부터 입기 시작했다는 우리민족 여성들의 전통의상이다. 규방살림을 많이 하면서 세상과 등지고 살다시피 우리민족 여인들이 어떻게 되어 저렇듯 아름다운 인체의 몸에 딱 맞는 옷을 고안해냈을까. 우리 민족의 얼이 배어있는 치마저고리는 실로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민족의 으뜸가는 예술품이다. 치마와 저고리 그 조화자체가 바로 독특한 아름다움이어서 아무리 못난 여인일지라도 저 한복만 입고 나서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마냥 고와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라고 다를 수 있겠는가.

언젠가 마을 처녀들을 동원하여 한족마을에 가서 문화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비록 우리말과 글은 몰라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입고 공연을 하는 우리 모습에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면서 연신 박수갈채를 보냈다.

오늘 그녀 역시 예쁜 한복을 입고 나서니 지금껏 그의 몸에 잠재되어 있던 미가 발산되어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더욱이 그가 오늘 특별히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선 것은 단지 아름다움을 얻기보다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민족의 얼과 넋을 되찾아가진 격이어서 더욱 그러했던 것이다.

그 사연을 들으니 지금껏 우리민족의 많은 여성들이 곱게 차려입은 한복을 보았지만 나에겐 오늘 저 여인이 입은 한복이 유독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치마저고리뿐 아니다. 남성들이 입는 바지저고리도 마찬가지다. 그 나름대로의 흡인력과 매력이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조선족 노인이 골수암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가족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어떤 옷을 입고 가시겠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삼베나 모시보다는 꼭 한복을 입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참군하여 군에 가서는 오랫동안 군복을 입고 있었고 제대해서는 공안 즉 경찰이 되면서 30여년을 줄곧 경찰복을 입고 지낸 사람이다. 특수직업이라 몸에 걸친 옷을 함부로 벗어 놓을 수 없고 늘 제복만 입고 다니다 보니 마치 감정조차도 딱딱해지고 무뎌진 듯싶어 사업하는 기간 조선족의 티를 낸 적이 많지 않아 같은 민족으로부터 무뚝뚝한 사람으로까지 평가받았다.

허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명절 때나 집안 잔치가 있는 날은 무조건 우리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오랫동안 경찰로 공직에 있다가 퇴직하면서 기념으로 받는 공안제복도 한벌 있었다. 식구들은 꼭 그가 그 옷을 입고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갈 것이라 여겨 그 옷을 입혀 달라고 하는가? 물었을 때 그 분이 한말이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나는 조선민족이니 내 민족의 옷을 입고 가겠오.”

옷은 그 민족의 상징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한복을 입었고 마지막 가는 길에 입었으니 그의 한생은 우리 한복을 입고 지낸 것으로 되지 않을까!

오랜 세월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던 민족의 복장을 처음 입고 감동되어 춤추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한 여인과 그리고 마지막 떠나갈 때 한복을 입고 떠난 어느 노경찰에게서 다시 한 번 우리 한복의 흡인력과 매력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