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2015년 10월에 타결된 12개국 간의 다자간 무역협정인 TPP는 공식 출범도 못하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TPP 탈퇴 선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공식화한 다음 날 이뤄진 것으로, 미국의 보호무역 흐름이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급가속(急加速)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조치들은 트럼프 취임 후 ‘100일 계획’에 따른 것인데, 이대로 진행되면 중국에 대한 ‘환율 조작국’ 지정과 중국산(産) 물품에 대한 고율 관세 적용도 머지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트럼프발(發) 세계무역 질서 재편은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양자 무역협정 시대’로의 돌입을 의미하며, 대미(對美) 무역 흑자 규모가 큰 중국·일본·한국 등이 주요 타깃이다.

내수시장이 취약하며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으로선 이러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우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거론되진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미 FTA로 미국에서 일자리 10만 개가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NAFTA 재협상의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다. 미·중 간의 경제전쟁이 본격화하게 되면, 그 불똥이 한국으로 튀게 된다.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재가공해서 미국에 되파는 한·미·중 3국 무역구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환율 조작국 문제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한·미 FTA 재협상 등 예상되는 대미 통상 마찰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시급하다. 한·미 동맹과 한·미 경제협력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노력도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무역 질서의 지각변동에 대비한 근본적인 국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임시방편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은 FTA 강국이다. 한·미, 한·중, 한·유럽연합(EU) FTA 등 15건 52개국과의 FTA가 발효돼 있다. 양자 무역협정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 토대는 마련돼 있다. 또, 트럼프의 경기 부양책으로 미국의 경기가 살아난다면 대미 수출이 호전될 수 있다. 정부와 수출 기업은 능동적·선제적 대응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