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00일 계획’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다. 취임 후 내각 등을 꾸리며 대선 공약을 재검토하는 ‘밀월 기간’을 갖던 과거 관행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부터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작전으로 ‘집권 후 플랜’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2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하고,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더니, 27일 이라크·시리아·이란 등 7개 ‘무슬림 테러 위험국가’의 국민에게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장관 인준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흔히 트럼프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라 말한다. 파격적인 시도로 인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선 맞지만, 트럼프 행보가 예측불허일 것이라는 측면에선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계획을 순서대로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행보도 일관된 전략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단지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국제정치에 대한 인식 및 정세관이 다를 뿐이다. 급진 이슬람, 러시아, 중국 등이 미국의 잠재적 안보 위협으로 꼽힌다. 그런데 트럼프 팀은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 등 급진이슬람이 미국을 괴롭히고 있으나 미국의 실존(實存)을 위협하진 못하며, 이는 당뇨병 치료처럼 장기적 관리를 통해 증상을 완화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또, 트럼프 팀에 러시아는 ‘유럽 문제’일 뿐이다. 구소련과 동유럽에서의 지역 패권은 몰라도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 패권에 도전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세계정세 인식하에서 동맹 재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27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했으며, 다음 달 1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날 예정이다. 영국과 일본을 축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에서의 ‘해양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메이 영국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를 단행한 것도 이런 미·영 동맹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들도 유럽연합(EU)을 떠날 것”이라며 독일·프랑스 중심의 EU를 흔들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다음 달 2∼4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한민구 국방장관,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일본 방위상과 각각 회담할 예정이다. 최근 미 국방장관의 첫 해외 출장지는 중동과 유럽이었다. 아시아를 먼저 찾은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또, 한·미 양국 정상이 회담을 한 다음, 한·미 외교장관 회담이 진행되고, 그 뒤에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이뤄지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국방장관 회담이 먼저 이뤄진다. 매티스 장관은 31일 한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핵·미사일 문제와 동맹의 중요성 때문에 한국을 첫 해외순방지로 택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티스의 방한(訪韓) 이유를 북핵만으로 한정 짓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 적은 중국이다. 외교·안보는 물론 무역조차도 중국 옥죄기에 맞춰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 요구가 문제가 아니다. 한·미 동맹 성격 자체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