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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 재일동포의 꿈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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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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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선 / 시인·제주 4·3연구소 소장]

   
▲ 허영선/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내 일터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일하는 30대의 그는 재일동포 3세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부모 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아왔다. 조선학교를 나온 그는 우리말을 잘한다. 지난해 말, 그가 결혼을 했다. 아내 또한 조선학교 출신 재일동포 3세. 하지만 일본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아내와 떨어져 지낸다. 정작 고향이 제주도인 아내는 한 번도 제주도 땅을 밟아본 적 없다.

일본에 책임 묻는 ‘역사적 증거’

결혼 전, 그가 말했다. 신부가 결혼식 때 입을 예쁜 한복을 맞추러 고향 제주에 오고 싶어 한다고. 하나 소박한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적이 한국적인 그와 달리 아내는 조선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퇴근길에 그가 또 하나의 소망을 조심스레 꺼냈다. 아내가 올여름 단 한 번이라도 제주에 올 수 있었으면 한다고. 외국인은 쉽게 밟는 특별자치도인데 그들에겐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그들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아직까지 조선적 재일동포는 고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아예 그들의 발목을 묶었기 때문이다. 조선적 재일동포가 한국에 들어오려면 먼저 재일 한국영사관에서 심사받고 한시적인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하면 들어올 수 없다.

대체 조선적이 무엇이더냐. 전후 일본이 재일동포에게 정치적으로 들이댄 하나의 기호였다. 그러니까 ‘조선적’이란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우리의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고국 땅을 밟으려면 늘 주목의 대상이 되는 재일작가 김석범 선생을 보라. 한 차례 통과의례가 지나서야 증명서를 발급받고 고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분단 이전의 조국, 언젠가는 있을 통일조국의 이름이란 의미로 스스로 무국적자의 길을 택했다는 이 소설가. ‘조선적’은 그에겐 통일의 상징적 부호다. 한국적으로 바꾸지 않고 일제강점기의 산물인 조선적을 고수하는 이들의 처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겨레임이 틀림없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 수는 경상남북도의 뒤를 잇는다. 특히 일본은 1923년 오사카~제주를 잇는 정기여객선 기미가요마루(군대환)를 띄워 제주 사람을 값싼 노동력으로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1934년 한때 도민 4분의 1이 일본으로 떠나던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해방 뒤 한국현대사의 참극인 4·3을 피해 살기 위해 떠난 땅이기도 했다. 이 땅의 험한 시대가 고향을 등지게 했던 존재다. 수많은 재일 1세대가 이념 굴레에 묶여 고향 땅 한번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간혹 부모의 성묘를 위해, 자유 왕래를 위해 한국적으로 바꿨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고령의 재일동포들을 대한다.

생전에 만났던 오사카 이쿠노구 양씨 할머니. 해방공간 때 한국에 두고 간 딸이 있었으나 할머니는 “한국적으로 쉽게 바꿀 수는 없어요”라고 했다. 그는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의 일원으로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반세기 만에 딸을 만난 그는 “시국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 아니냐”고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통일되는 날을 그리다 그는 세상을 떴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린 초상

남북 경색 국면에 죄 없이 죄지은 자처럼 불편해하는 그들이 저 나라에 있다. 인권의 그늘 속에 사는 그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시린 초상이다. 이제 정치적 견해를 떠나 그들을 대하면 안 될까. 이 시대, 우리 앞엔 통일시대를 열어야 할 단단한 문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려면 이 막힌 문부터 열어야 한다.

지금 아내의 제주 방문을 기다리는 연구원의 심정은 착잡하다. 올여름, 과연 이 재일동포 3세 아내의 고향 방문의 꿈은 이뤄질까? 최근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재일동포 관련 여권법 개정안과 재일 조선적의 자유로운 왕래를 허하라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을 보면서 얼마 뒤 나올 입국 신청 결과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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