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8.17 목 16:50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교포지논단
우리 결혼이야기: 어제와 오늘
정음문화칼럼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8.0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리화 / 연변대학

1910년생 김씨 할머니(1992년 사망)는 열네살 앳된 나이에 열아홉 리 씨 할아버지와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면의 자그마한 리 씨 종족부락에서 소박한 중매혼인을 했다. 2남 5녀 일곱 자식에 22명의 손주들을 슬하에 두고 할아버지가 여든둘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63년간 부부의 연을 이어가셨던 두 분. 맏이와 막내의 터울이 무려 24살이었던 탓으로 일곱 자녀의 결혼은 1947년에 막을 올려서 1980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그 엔딩을 고하게 되었고 그 사이 조카들이 이모, 고모, 삼촌보다 먼저 혹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식을 올린적도 여러번 있었다.

할머니의 장남은 1969년 스물아홉에 고중 동창이었던 아내와 중국 연길시 태양향 광흥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연년생 남매를 보았다. 1995년 스물다섯, 1999년 스물여덟에 각자 대학 동창남편, 오다가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연길시에서 연애 결혼한 남매는 스물두 살짜리 아들과, 열네 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열네살에 벌써 결혼생활을 시작하셨던 증조할머니와 아직 부모 눈에는 철부지 애기일뿐인 열네살 증손녀, 늦어도 서른 전에는 ‘치워버릴 수’ 있었던 자식들과 마흔이 되도록 결혼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손주들, 청일색 우리 민족으로부터 이제 한족은 기본이요, 만족, 회족, 장족, 그리고 한국, 일본 등 그 성분이 엄청 알록달록해진 "다국적•다민족 사위, 며느리 대오", "이혼하면 동네망신이요, 인생의 실패"인고로 ‘일부종사’만이 진리라는 신념을 굳게 지켜 오셨던 할머니와 이혼과 재혼으로 과감히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혼인을 정리하고 다시 그 조각 맞추기에 도전하는 손주 세대의 ‘사랑과 자기 찾기’, 할머니가 평생 고수하셨던 혼인한 여자의 상징 쪽머리, 그 딸과 며느리들의 ‘새 각시 파마’ 그리고 처녀인지 각시인지 구분이 어려워진 손녀딸, 손자며느리들의 머리차림새, ‘딸 가진 죄인’으로부터 ‘아들 가진 죄인’으로 역변해 버린 결혼시장판도, 집안에서 술판을 벌이면서 며칠이고 이어졌던 잔치를 고작 두, 세시간 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마무리하는 예식장 혼례. 한두마디로 명쾌한 정리가 어렵지만 대충 짚어낼 수 있는 이씨 가족 4대에 걸친 결혼변천사 어제와 오늘의 주요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1924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약 100년간 이어진 이씨 가족의 결혼이야기,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민초들의 자잘한 삶의 한자락, 단지 그 정도로만 비춰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익숙함과 친근함은 분명 우리의 몸과 기억의 구석구석 스며들고 배어진 우리에 의한, 우리네만의 백년짜리 결혼이야기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유 때문이리라.

인류학에서의 대표적인 정의로 이른바 결혼(혼인)이란 "한명 혹은 여러 명의 남성과 한명 혹은 여러 명의 여성의 결합. 즉 사회가 지속적인 성 접촉의 권리를 부여하고 인정한 남녀사이의 관계"로 설명된다(William A․ Haviland). 여기에서 남성, 여성은 생물학적인 성별(sex)일수도 있고 사회적성별(gender)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에 따라 각자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고 착각하는 결혼이 실은 부동한 문화의 틀 속에서 나름대로의 도덕성, 윤리성과 정체성을 성찰, 확인하고 실천해나가는 규범 내지는 제도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는 것이다. 단 문화의 특성상 전통의 지속은 정도 부동한 변화를 수반하면서 비로소 가능하며 이는 한 문화요소의 존재양상이 곧 전통의 지속과 변화의 역동적인 경합 혹은 그 결과를 의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속에서 규범 또는 제도의 재정립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부계적 출계규범을 바탕으로 동성동본불혼의 근친상간 금제(incest taboo)를 엄격히 지켜왔다. 이는 지금도 성씨와 본이 동일하면 근친결혼이라 하여 기피하고 특히 본이 하나뿐인 성씨일 경우에는 통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고집해왔던 민족내혼의 전통은 개혁개방 이후 국내 대도시 및 해외로의 활발한 인구이동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여 우리네 통혼권은 기존의 민족내혼 및 국내 타민족과의 통혼 그리고 국제결혼이라는 세 갈래의 방향으로 넓혀가게 되였다.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당연히 결혼해야 하고 결혼을 생애과정의 필수적인 통과의례로 여겼던 전통관념 역시 만혼(晩婚), 비혼(非婚)에 의해 색바래지기 시작했다. 얼핏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미혼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이제 더는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되어버린 결혼, "언제 결혼해?", "왜 결혼 안해?"라는 걱정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결혼적령기의 폭이 넓어졌고 비혼에 대한 사회적시선이 부드러워졌다.

결혼식의 전주의례로서의 말떼기, 사돈보기는 통합, 간략화의 변용을 보이고 있다. 결혼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결혼식은 1989년 연길시 성흥혼례청사의 개업을 시작으로 가정집으로부터 상업성 예식장으로 그 무대를 옮겼으며 전안례, 후례가 소실되고 신랑신부 혹은 신부와 부친의 동반 입장, 드레스 착용, 부케 던지기와 등 서양식 혼례 및 액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폭죽 터뜨리고 결혼날짜의 선정, 증여교환의 장에서 중국어발음의 행운과 복을 의미하는 수자들을 선호하며 결혼증서를 선독하는 등 중국식 혼례의 여러 절차와 요소가 추가되는 등 변용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신혼부부의 사회적 신분전환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통과의례로서의 문화적 의미는 그대로 혹은 형태를 바꿔가면서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교배례와 합근례, 큰상 받기 등 부부의 결합을 상징하는 문화요소들이 예식장 결혼식을 통해 적절하게 재구성되고 있으며 다산과 부부금슬을 상징하는 닭이나 달걀, 대추 등 음식들이 나란히 큰상에 오른다.

그런가 하면 연애기간 내의 이벤트는 물론 약혼, 혼례의 전반 과정에서 남성이 주도하고 그 소비를 책임지는 정형화된 젠더역할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는 이른바 전통의식과 시대적 변용의 아이러니한 공존이 뚜렷하게 안겨온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결혼이 곧 여성의 친정에서 시댁으로의 귀속변경이라 생각하며 시댁에서는 반드시 며느리를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농후하다. 즉 여성들의 공적영역에서의 활약상과 달리 가정생활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따라서 결혼상대로서 바람직한 남성상 역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 등 여러 면에서 모두 여성보다 우월할 것을 기대하며 웨딩촬영과 신혼여행, 혼례비용, 신혼집과 인테리어, 함에 넣는 고가의 장식품과 의류, 현금 등 결혼을 상징하는 일련의 물질적 표상 중 절대 대부분을 신랑 측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성과 사랑을 기초로 하는 현대결혼은 정서적 친밀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돌아누우면 남"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중심을 이루는 두 사람의 관계가 생각보다 많이 섬세하고 취약하다는 게 함정이다. 1990년대 이후의 조선족사회 최대 사안의 하나가 바로 급증하는 이혼율과 그에 수반하는 자녀교육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였으며 이는 곧 민족공동체의 위기론으로 이어졌다. 물론 기존의 연구들에서 강조하는바와 같이 경제적 이익 추구의 인구이동이 이혼의 급증을 유발한 요인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구조적변화와 더불어 여성의 경제능력 제고, 개인의 정체성 및 개인주의가치관의 침투, 도덕적 제약의 완화, 전통적 가족규범의 약화 등 보다 넓은 분석의 틀에서 조선족사회의 이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증가하는 이혼율에 비례하듯이 재혼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며 결혼이 이제 더는 "일생에 한번뿐"이 아닌 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재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이 거두어졌다. 그런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황혼재혼 역시 우리네 결혼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초혼에 비해 복잡한 관계성 그리고 젊은 층의 재혼이 마주하게 되는 자녀문제와 황혼재혼에서 부딪치는 재산 분규, 돌봄 문제 등 재혼가족들이 풀어나가야 하는 어려움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결혼을 통하여 가족이라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질긴 인연의 끈을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만들어내며 귀속된 사회집단 전체의 존속과 위상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날로 늘어나는 만혼, 비혼과 이혼, 재혼 등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와 위기에 대처하는 지혜와 해결책의 탐색은 향후 조선족사회가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며 그 고민의 깊이만큼 깊어진 우리네 결혼이야기가 세세대대 오래도록 이어져갈 것임을 감히 기대해 보는 바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