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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몰이’ 아베의 속내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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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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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연 /국제부장

무명 정치인 아베, 북풍 덕에 성장 / 총리 오른 후에도 국내 정치 이용 / 북핵 위기론 조장 최근 더 노골화 / 장기집권·개헌의 발판 활용 의도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고이즈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평양선언에는 과거 청산과 경제 협력, 국교 정상화 등의 과제가 담겼다.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사과도 받아냈다. 추락하던 고이즈미 지지율은 반등했다. 고이즈미는 2004년에는 2차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연금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던 그는 곤두박질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집권 연장에 성공했다. 북한 카드로 국면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무명 정치인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 국민에게 알려진 것도 이때다. 당시 관방장관으로 고이즈미를 수행했던 아베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납치 문제에 대한 사과를 이끌어내는 데 공을 세워 일본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수우익으로부터도 박수를 받았다. 아베는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공식적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지만 주목받지 못하던 터였다. 그는 귀국 후에는 북한이 귀환을 전제로 일본 방문을 허락한 납치 생존자 5명을 돌려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고이즈미에게 주장해 관철시켰다. 납치 문제로 명성을 얻으면서 아베는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아베가 2006년 고이즈미의 뒤를 이어 총리 자리에 오른 데에도 이런 일들이 밑거름이 됐다.

지난여름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정권이 무너질 위기까지 내몰렸던 아베를 살린 것도 북한 카드다. 부인 아키에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로 20%대까지 하락했던 아베 정권 지지율은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50%대로 반등했다. 아베는 이처럼 ‘북풍’에 힘입어 성장한 정치인이다.

문제는 아베가 북한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북핵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대중의 불안감을 부추겨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활용했다. 아베 정권이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위기를 부추기면서 호들갑을 떠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베 정권의 북핵 위기론 조장은 최근 더욱 노골화하는 기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의 최근 발언이 그렇다. 그는 “북한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에 10만명 단위로 북한 난민이 몰릴 것이다”, “무장한 난민을 체포할지, 사살할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반도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말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일부 일본 언론의 왜곡 보도도 석연치 않다. 지난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800만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에 대해 화를 냈다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한다. 거지 같다’고 비판했다는 등의 믿기 어려운 ‘정부 관계자발 보도’가 나온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의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아베 총리는 그제 기자회견에서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달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국난(國難)으로 규정하고 이번 해산을 ‘국난 돌파 해산’이라고 이름붙였다. 북핵 위기를 국회 해산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아베는 “이번 선거에서 신임을 얻어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의연히 대응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북핵 위기 상황을 장기집권과 ‘전쟁이 가능한 국가’를 가능케 하는 개헌을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지금은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이 거친 말싸움을 벌이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엄중한 시기다. 일본은 한·미·일 3각 협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북핵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적극 보태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방의 온당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불필요한 불안과 혼선만 조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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