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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사이에 불을 붙이려는 이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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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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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지난달 28일 일본 교토 우지 강변에선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제막식이 열렸다. 시인이 대학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은 곳이다. 일본 시민단체가 12년 동안 노력한 성과여서 많은 한일 시민이 참석해 축하했다.

행사 전 사진을 찍는데 한 중년 남성이 “어디서 왔느냐”고 했다. 한국 기자라고 하자 경찰이라면서 “반대 세력을 조심하라”고 했다. 정치적 행사도 아닌데 반대 세력이라니, 언뜻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잠시 후 청바지를 입은 중년 남성 한 명이 건들거리며 등장했다. 덩치가 큰 대여섯이 그를 호위했다. 처음 들어보는 신문사 완장이 보였다. 현장에 긴장이 감돌았다. 주최 측이 행사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는 등 예민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우익 진영은 윤동주 시비 건립을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고 했다. 시인이 한국 이름을 빼앗기고, 한국어로 시를 쓰다 잡혀간 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요즘은 한국 관련 비석 하나 세우기도 쉽지 않구나 싶어 씁쓸했다.

비석 소동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오쿠 시게하루(奧茂治)라는 전직 자위관이 올봄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 있는 강제징용 ‘사죄비’를 밤사이 ‘위령비’로 무단 교체한 것이다. 그는 경찰에서 비석을 세운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2000년 사망)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증언이 허위인 만큼 비문도 거짓이라고 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그를 여러 번 인터뷰했고, 그를 ‘영웅적’이라고 평가하는 독자 의견을 소개했다.

오쿠는 어떤 인물일까. 최근 발간된 진보 주간지에 따르면 그는 위안부 관련 우익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4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를 왜곡 보도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일을 업으로 삼다시피 한 인물이다.

일본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휘발성 높은 이슈를 찾아 불을 붙이고 주목을 끌려 한다. 물론 한국에도 비슷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선 ‘혐한’이 유행처럼 번진 탓에 금전적으로도 득이다. 오쿠만 해도 8월 말까지 후원금 약 4500만 원을 모았다.

그렇더라도 감정적 대응은 오히려 이들이 원하는 바다. 오쿠는 법정에서 주목을 끌려고 스스로 한국에 돌아와 붙잡혔다. 하지만 한일 주류 언론이 무시해 원하는 효과를 못 냈다. 시비 제막식에 온 우익들도 시민 수백 명이 마음을 합쳐 아리랑을 부르자 기세에 눌려 조용히 있다가 갔다. 요는 불필요하게 이들의 목소리를 키워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한일 시민사회가 손잡고 화해 분위기로 이들을 압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106세로 세상을 떠난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세이루카 국제병원 명예원장의 마지막 말을 담은 책을 읽다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의사였던 그는 죽기 직전 세계 평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본인 프로듀서와 의사의 도움으로 잃었던 목소리를 되찾은 한국인 성악가 배재철을 언급했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말년에 배재철의 열성적인 후원자가 돼 함께 전국을 누비며 토크 콘서트를 했다. 그는 “콘서트 현장은 매번 눈물과 기립박수로 하나가 된다. 그걸 보며 세계 평화가 언젠가 실현될 거라고 확신하게 됐다. 상대의 나라를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이 한 명씩 늘면 평화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했다. 그의 확신을 부러워하면서 일단 나부터 한 명씩 그런 사람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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