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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다시 돌아봐야 할 것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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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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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 언론인·역사저술가

日 ‘대단한 업적’ 믿는 메이지유신/돈벌이 위한 ‘英음모설’ 제기 화제/유신이후 승리만 좇는 풍조 낳아/日사회, 새로운 목소리에 관심을

   
 

지금으로부터 꼭 150년 전인 1868년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이뤄진 해이다. 2년 전인 1866년 12월25일 고메이(孝明)일왕이 갑자기 죽자(독살설이 있음) 아들인 메이지(明治)가 이듬해 1월9일 왕의 자리를 이어받아, 탈상이 끝난 후인 1868년 10월에 즉위하면서 메이지시대를 열었다. 일왕 메이지는 이해에 도쿠카와 막부(德川幕府) 추종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수도를 도쿄로 옮겼으며, 국가 권력을 쇼군(將軍) 대신에 일왕이 갖는 중앙집권체제로 바꾸는 등 일련의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이후 군사적으로 강력해진 일본은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고 태평양 국가에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살상되고 자국민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 비극을 초래했지만 일본인들은 메이지유신이 일본을 세계적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대단한 업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한 메이지유신의 주연은 우리가 잘 아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이다. 사카모토는 도사번(土佐藩) 출신의 하급무사였으나 고향을 벗어나 각지를 돌며 서양의 무력침략에 대비해 일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가이엔타이(海援隊)라고 하는 일종의 종합무역상사를 세웠다. 그는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사쓰마(薩摩)번과 초슈(長州)번 사이에 동맹을 성립시켜 이들이 조정의 권력을 잡게 했으며, 권력을 막부에서 일왕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기안함으로써 메이지유신 달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작고한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료마가 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때 일본 젊은이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인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은 사카모토가 스스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당시 아편으로 큰돈을 번 영국이 일본에서도 돈을 벌기 위해 음모와 사주를 한 데 따른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의 일본인 석좌교수인 니시 도시오(西銳夫)다. 후버연구소는 2차 대전이 끝났을 때에 일본에서 수많은 관련 문서를 대량으로 입수해 간 곳으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연구한 니시가 메이지유신의 영국음모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니시의 새 학설은 일본의 조그만 번 출신의 떠돌이 무사였던 사카모토가 무슨 자금으로 무역회사를 만들고 해군조련소를 건설하며 또 반란군과 싸울 무기와 탄약을 조달해 주었느냐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동인도회사랑 홍콩상하이은행의 큰손인 자딘 매터슨이 유신세력과 비밀회합을 가졌는데, 그렇게 영국이 사카모토 등의 유신세력에게 배후에서 돈을 대줌으로써 유신세력이 무장을 하고 막부세력을 이길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아편을 팔아먹기 위해 인도와 청나라를 굴복시키는 데 너무 군사적·재정적 희생이 컸기에 일본에 대해서는 전략을 변경해 현지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 무기, 군함 등을 제공해 이들이 기존의 권력을 쫓아내도록 만들고 그 공백을 뚫고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남북전쟁이 막 끝난 미국으로부터 30만정의 중고 신품 소총과 탄약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 관군(사쓰마-초슈 군)에게 인도됐는데, 이것은 자딘 매터슨의 나가사키 지점장이던 토머스 그라버(1838~1911)가 수배해 준 것이다. 그라버는 영국으로부터 군함과 최신의 암스트롱포(砲)를 관군에게 팔았고 거액의 무기대금까지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은 도쿄의 황궁 옆 가장 좋은 곳에 대사관을 허락받고 유신정부의 교역과 금융을 손에 넣은 후 각 방면의 자문역이 됐다. 이처럼 영국이 유신 후 막대한 이권을 챙긴 것이야말로 곧 일본 막부체제의 전복에 영국이 개입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의 반론도 당연히 많다. 사카모토의 애국심을 깎아내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옳고 그름이야 차차 학문적으로 걸러질 것이다. 다만 니시는 영국음모론에 머물지 않고 메이지유신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집권한 이후 일본의 전통적인 미덕과 관념을 무시하고 전쟁의 승리만을 추구하는 이상한 풍조가 일본을 흔들어 놓았다고 개탄한다. 유신세력은 전쟁 후 수천, 수만명의 저항군 시신을 들판에서 썩어가도록 방치하는 등 무사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잔학상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이상한 풍조가 일본을 태평양전쟁이라는 참화의 태풍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은 여전히 메이지유신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사카모토에 대해서도 아직 다른 평가가 없다. 니시는 평화로운 일본열도의 문을 무력으로 깨고 들어온 구미열강에 대한 재평가 없이 일본이 여전히 구미의 제국주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새로운 일본은 이제 배려와 예의 등 도덕성이 융합된 일본인 전래의 전통과 미학을 회복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로 메이지유신 150년을 맞은 일본, 다시 전쟁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권층이 팽창주의로 나가는 일본 사회가 이런 지적에 눈을 돌릴 수 있을까. 메이지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일본을 위해 필요한 것 같다. 일본의 진로를 놓고 열변하는 니시의 목소리가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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