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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 외교, 일방적 희망일지 모른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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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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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 / 논설위원

   
 

“상처는 가만히 두면 낫는데 자꾸 붙이고 떼다가 덧날 수 있다. 갈등이 더 진전되지 않도록 봉합이 필요하다.”

주일 한국대사의 최근 발언이다. 눈길이 간 용어는 상처로 표현해 논란이 된 위안부 부분이 아니라 ‘봉합(封合)’이었다. 일본 정부의 반대가 완강한 만큼 일단 봉인(封印)해 두자는 의미다. 이른바 사드(THAAD)식 해법이다.

사드식 해법이 처음 거론된 것은 지난해 10월 31일 한·중 정부 간의 협의 결과 발표 때다. 정부는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3불(不) 약속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드 문제는 봉인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아세안 순방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봉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사드식 해법은 지난해 말 정부가 새로운 위안부 입장을 표명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기존 합의는 문제가 있지만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는 게 요지다. 국가 간 공식 합의를 부정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하에 파기는 하지 않되 봉인을 통해 실질적으론 인정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절묘한 수와 어정쩡한 봉인이라는 찬반양론이 일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 의혹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해외 파병까지 전제된 비밀 군사협정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완전히 덮고 끝이라고 하는 것도 봉인이고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관계가 발전하는 속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는 것도 봉인”이라고 정의했다.

사드식 해법은 양국 정부 간의 인식 차이를 인정하고 일단 덮은 뒤 시간을 두고 푸는 투트랙 전략이다.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는 소극적인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우호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봉인된 현안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드 문제의 경우 당분간 재점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갈등 요인이 해소된 건 아니다. 중국의 종착점은 봉인이 아닌 철수다. 한국의 성의를 계속 요구하며 보복의 고삐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당장 다음 주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창에서 예정된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도 움직일 수 없다”며 기존 합의 준수를 강력히 요구할 태세다. UAE와의 군사협정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다시 불거질 개연성이 충분하다. 결국 상대방 국가가 문제를 꺼내들 경우 사드식 해법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봉인은 어찌 보면 정부의 일방적 희망이 섞인 기대에 불과할지 모른다.

거대 패권국 틈바구니에 낀 우리로선 운신하기가 쉽지 않다. 강대국들의 주판알은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적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손잡는다. 현란한 외교 이벤트 이면의 냉엄한 본질을 봐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도 하기 전에 봉인하고 호의를 기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줄 건 주고 동시에 받아낼 건 어떻게든 받아내는 게 정상적 외교다. 일차원적이고 조건반사적인 대응은 하책이다. 눈앞의 성과에 연연해 저자세 외교로 일관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평창’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가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순간이라고들 한다. 눈앞의 퍼즐 맞추기에만 골몰하기보단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점이다. 미·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보다 일관된 움직임을 견인할 원칙이 요구된다. 상대국과 입장차가 뚜렷하더라도 무조건 덮고 가려 하다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장기화를 감수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지지층의 여론만을 의식해 섣불리 움직여서도 안 된다. ‘평창’ 이후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새 외교안보라인을 짜는 것도 심각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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