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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매직, 그리고 한국경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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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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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 산업1부장

   
 

새해, 대한민국은 스포츠 스타들의 향연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첫 소식은 베트남에서 날아든 ‘박항서 신드롬’이었다. 박 감독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축구 변방인 베트남을 지난달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으로 이끌었다. 거리로 뛰쳐나온 베트남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한계’를 돌파한 대표팀을 통해 베트남 국민들은 못살아서 서럽고 자존심 상했던 응어리를 떨쳐내는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박항서 매직의 비밀은 뭘까. 그가 베트남에 부임한 건 지난해 10월 25일. 전술 변경만으로 3개월 만에 팀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베트남 축구 기대주들의 유럽 진출을 돕고 있는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는 지난해 12월 태국 방문경기에 주목했다. 10년간 한 번도 못 이겨 본 태국전을 앞두고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한다. 태국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믿게 된 선수들은 마침내 2 대 1로 승리했다. 한번 한계를 돌파하자 이후로는 파죽지세였다. 새해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의 강호 호주, 이라크, 카타르를 연파했다.

두 번째 소식은 백인들이 지배하는 테니스 코트에서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86년 만에 호주오픈 4강에 오른 정현 스토리다. 6세 때 약시 진단을 받고, 초록색을 많이 보려 테니스를 시작했던 그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도 교정시력이 0.6밖에 되지 않지만 시속 200km 속도의 경기를 극복해냈다. 4강 경기 후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앞으로 더 뛰어난 플레이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평창 겨울올림픽. 유럽 텃밭에서 금메달 신화를 쓴 윤성빈은 “스켈레톤을 시작했을 때부터 유럽 톱 랭커를 못 넘을 산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봅슬레이 4인승에서 아시아 첫 메달을 은빛으로 장식한 파일럿 원윤종은 “우린 충분히 메달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세계적 강호를 연파한 여자 컬링 대표팀 비결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이었다. 스스로를 믿은 선수들이 잇달아 아시아의 ‘한계’를 돌파해낸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지는 현상을 ‘배니스터 효과’라고 한다. 과거 세계 육상계에는 ‘1마일(1600m) 4분 벽을 깨면 심장이 터진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 미신을 1954년 영국 옥스퍼드대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가 ‘3분59초04’의 기록으로 깼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다. 배니스터가 한계를 돌파하자 불과 한 달 만에 10명이, 1년 후에는 37명이, 2년 후에는 300명이 무더기로 4분벽을 넘었다. 최근 한 달 우리가 목격한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또 다른 배니스터와 다름없다.

광복 이후 한국 기업들도 그랬다. ‘임자 해봤어’ 정신으로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일군 현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다’는 정신으로 반도체와 갤럭시 신화를 낳은 삼성, ‘기술대국’ 정신으로 굴지의 전자 화학 그룹을 일군 LG,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죽겠다는 ‘우향우’ 정신으로 제철 신화를 이룬 포스코는 모두 허허벌판에서 맨주먹으로 한국의 ‘한계’를 돌파했다.

한국 주력산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비관과 위기론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우리 스스로를 믿을 때다. 긍정의 선순환 속에 바이오, 나노, 인공지능, 정보통신기술(ICT) 등 다양한 산업에서 배니스터 기업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할 역할도 박항서 감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팀 코리아’에 대한 믿음, 그리고 격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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