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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9년의 유산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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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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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 논설위원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가 상대를 향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설전을 벌이던 영상이 새삼 화제가 됐다. 이들은 각각 최태민 일가, 그리고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대가 대통령이 되면 이 문제들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때 제기된 의혹들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고 두 사람은 동반 몰락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상대를 향한 경고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적중했다. 섬뜩할 정도다.

지난 며칠사이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을 크게 훼손했던 두 사람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이어졌다. 박근혜는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은 뇌물 등 16개 혐의로 기소됐다. 경선 당시 상대의 문제점은 잘 찾아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했던 오만과 어리석음이 초래한 불행이다.

이명박근혜 9년은 한마디로 ‘권력의 공공성을 파산시킨’ 퇴행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과 관련한 혐의들을 보면 ‘거대한 사익추구 공동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개인과 가족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적극 활용했을 뿐 아니라 국가정책 또한 공공성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결정하고 시행했다. 그 결과 국민 혈세는 줄줄이 새고 국토는 상처투성이가 됐다. 미디어의 사유화는 이런 공공성 훼손을 무리하게 합리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권력의 공공성을 무시하는데 있어서는 박근혜도 이명박 못지않았다. 그에게 24년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개인적으로 남용했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일련의 새로운 사실들은 그가 공적 통로를 건너 뛴 채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이라는 사사로운 관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박근혜는 너무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지만 정작 그 자리에 따르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귀찮아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해가 중천에 떠있는 평일 근무시간에, 그것도 긴급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계속 침실에만 머문 불성실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박근혜는 지난 2014년 청와대 회의에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니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니 국기배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발언했다. 본래 사사로운 권력일수록 외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공적 의례에 더 집착하게 되는 법이다. 그럴듯한 공적 형식을 통해 권력의 사사로움을 감추려 든다.

절대군주였던 조선시대 왕들조차 신하들과의 경연을 통해 권력의 공공성을 상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혜에게서는 이런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책이나 토론을 별로 가까이 한 것 같지도 않고 사유와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 기억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퇴행의 책임에서 국민들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을 뽑은 게 바로 국민들이니 말이다. 아무리 피해자라고 해도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

수년 전 실시된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은 ‘관용’의 수준이 대단히 낮고 ‘경쟁’과 ‘성공’을 가장 중시하는 등 공공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공공성의 결여가 사사로움을 추구하는 권력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국민들의 수준이 지도자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이후 혼란과 격변은 이런 잘못된 선택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권력의 공공성에 대한 각성이 움튼 시기이기도 했다. 광장에 울려 퍼졌던 “이게 나라냐”는 외침은 사유화됐던 국가권력을 하루속히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절규였다. 이런 반성과 각성이 국민들의 올바른 정치적 판단과 선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명박근혜 9년의 부정적 유산은 역사 속에서 최소한의 긍정적 의미나마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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