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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 꽃이 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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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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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텔레비전 드라마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선글라스 쓴 사람을 보면 재미동포를 먼저 떠올렸다. 선글라스를 쓰거나 머리에 인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부티’가 났다. 한국이 중진국 소리 듣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동포는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대접 받았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캐나다에 40년 넘게 산 원로 동포들은 말한다. “예전에는 캐나다 이민 비자를 받으면 고등고시 합격이 부럽지 않았다.” 과거 해외동포라는 용어는 ‘선망’과 동의어였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화한 만큼 해외동포들의 위상도 많이 바뀌었다. 이민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점차 달라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축하한다” “부럽다”는 의례적인 언급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이 있다. “낯선 땅에 적응하느라 고생 많겠다.” 한국이 이제는 세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외동포에 대한 시각이 ‘선망’에서 ‘염려’로 바뀌는 동안,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의 시각도 당연히 변했다. 이제는 한국에 가서 선글라스 끼고 부자 나라 사는 티를 낼 수가 없다. 지금은 부티는커녕 ‘서울 구경 온 촌사람’ 티가 날까 봐 두렵다. 캐나다에서 한국에 들어갈 때면 선물로 가져갈 만한 것을 찾느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국이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편 해외동포의 위상이 딱 그만큼 떨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국 내에서 해외동포들의 위상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국에 대한 동포들의 관심이다. 새로운 나라에 완전히 동화하는 것은 이민 3세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민 1세대는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한 캐나다·미국 사람이 될 수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끊기가 힘들다.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문화 즐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한인들 대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 또한 한국 이야기이다. 특히 세월호 사태와 촛불혁명 등 최근 몇 년 동안 모국에서 격변이 일어났던 까닭에 모국에 대한 해외동포들의 관심은 부쩍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CNN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라도 언급하면 좌불안석이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 만나 한국 정치 이야기하고, 소셜미디어에 한글로 글 쓰고, 토론토 거리에 나가 “박근혜 퇴진하라”며 촛불시위를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가, 우리까지 나서는 것이 오지랖 넓은 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가벼운 자괴감이다. “캐나다에 살면 캐나다 일에나 신경 쓰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자괴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해외동포 입장에서 보자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은 모국 국민들이 느끼지 못하는 중대한 의미를 하나 더 담고 있다.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발표를 이렇게 시작했다. “존경하는 남과 북의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문재인 대통령), “친애하는 북과 남, 해외의 동포 형제자매들”(김정은 국무위원장). 해외에 사는 동포들도 모국 국민들과 똑같이 두 정상으로부터 회담 결과를 이렇게 보고 받은 것이다. 내가 사는 나라와 모국 사이에 끼여 있다는 어정쩡한 느낌, 해외에 살면서 한국 상황에 깊이 관심을 가져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 이런 것들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선언이었다.

1992년 LA폭동 이후 미국에서 한인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을 펼쳐온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두 정상이 남과 북의 국민과 해외동포를 나란히 언급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고 했다. 판문점선언은 이렇게 또 다른 의미로 700만 해외동포들을 감동시켰다.

두 정상이 “해외동포”를 불러주었을 때, 우리는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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