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4.15 월 19:27
재외선거, 의료보험
> People/커뮤니티 > 교포인사인터뷰
“코리아타운 일구고 보니 어느새 노인(老人).
다시 꿈 꾸는 ‘넘버원 코리안’”
-이영송(李榮松)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 회장-
편집부  |  admin@oktime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9.02.2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장(長)자 들어간 것만 나열해도 한참이다. 한미문화교류재단, 라이온스클럽, LA미주상공회의소, 민주평통, 한미정경협회,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최근 그의 이력에 한 줄이 더 늘었다.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이하 미주한인노인회) 회장. “다른 건 다 맡아도 노인 문제만큼은 사양하고 싶다”던 그는 지금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노인들을 통합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다. 미국에 있는 40만 한인 노인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한 이영송(李榮松,65) 회장을 서울에서 만났다.            [편집위원 김명신]


뭐가 그리 급한 지 연구소로 들어서자마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빗자루 들고 (LA)올림픽타운 근처부터 청소할 겁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이에요.” 대한노인회 회의에 참석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한 뒤 부랴부랴 오는 길이란다. 이영송 회장과의 인터뷰는 찻잔이 채 올려지기도 전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시작했다.

“나를 벌써 노인 취급하는 거야?” 화 내며 시작한 노인회 일

그의 관심사는 온통 ‘노인(老人)’에 집중돼 있었다. 5년 전부터 그 많던 장(長)직을 거의 내놓고 본업인 치과의사와 교회 봉사 일에 매진해왔다는 고백이 선뜻 믿겨지지 않았다. 그만큼 의욕이 넘쳐나고 있었다. 안 써본 감투가 없다시피한 조직생활의 달인인 이 회장을 움직인 ‘노인’의 매력이 궁금했다.

“지난해 9월 절친한 후배로부터 노인회 활동을 해보라고 권유받은 게 계기입니다. 대뜸 화부터 냈어요. “아니 왜 하필 노인이냐. 벌써 노인 취급하는 거야. 다른 건 다해도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아.”라고 후배를 쏘아붙였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거에요.”

1975년 미국으로 온 뒤 공부한다 일 한다고 이래저래 바쁘다면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문득 마주한 거울에서 어느새 예순 중반을 넘기며 노인이 돼 가는 자화상을 발견하였다. 한편으로는 하릴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LA코리안타운 동포 노인들의 무기력한 모습도 떠올랐다.
“인생사를 나눠 보면 어린 시절에는 공부하고, 청·장년기에는 생업에 매진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마치 없는 것 처럼 취급합니다. 인생의 제3막은 노인으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응당 보람차고 의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 회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지칭하는 한인 노인들이 누구인가? 바로 세계 170여 개국에 한민족의 뿌리를 심은 1세들이 아닌가? 미국으로 좁혀보자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손짓 발짓해가며, 밤낮으로 땀 흘려서 LA와 뉴욕에 코리안타운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코리안타운 일궈 낸 40만명의 한인노인(韓人老人)

“나이 먹은 사람이 하루하루 아무 일 않고 보내는 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무기력해지죠. 사람은 사회로부터 다른 이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혜택을 입으며 살아갑니다. 노인이라면 그만큼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노인 시기에는 열심히 봉사해 사회에 자기가 받은 혜택을 되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노인 문제는 범세계적인 문제다. 한국도 지난 2000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를 넘어서면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했고, 앞으로 5년 후면 인구의 14%가 노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해방과 건국,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와 선진화까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견뎌내며 정작 본인들이 늙어가는 건 잊어버린 듯 했다. 그러는 사이 노인은 사회적 소외의 상징 또는 애물단지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본국에서도 이러한 데 하물며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 노인들은 어떠하랴.

“저는 우리 동포 노인들이 보람을 느끼도록 돕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돈을 벌면 기쁘고, 사랑하면 행복감에 두근두근 하잖아요. 이에 못지 않은 기쁨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사회에 자기 재능을 환원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 회장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러고 보니 이 회장의 머리에는 하얀 새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노인회 임원들이 제가 나이가 어려 미주회장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 염려했다 하더군요. 간신히 커트라인인 만 65세를 넘겼기에 망정이지 노인그룹에 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허허) 다행이죠. 팔팔하게 비즈니스하고 있고 몸도 건강한 지금이야말로 제 스스로 노인을 준비하고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니까요.”

전 YS미주후원회장인 그에게 재외국민 투표권을 묻다

이영송 회장의 이력을 뜯어보면 본국과 관계된 일들이 유독 많다. 더러는 지극히 정치 지향적으로 보이는 이력도 눈에 띈다. 1991년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후원모임인 민주산악회의 미주회장을 맡기도 했다. 화제를 바꿔 2월 5일 국회를 통과한 재외국민 투표권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되돌아온 그의 답변은 예상 밖으로 부정적인 것 일색이었다.

“재외국민 투표권 부여, 전 다소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동포사회가 본국 정치 문제를 수용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은 것 같아서입니다. 동포들이 수십년의 세월동안 고생하며 일궈낸 미국, 일본 등의 코리안커뮤니티가 한국정치의 축소판으로 변질될 수 있어요. 동포사회에서 지역간 갈등, 이합집산의 분열이 일어나도 뾰족이 막을 해법도 없어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의지를 중시하는 체제입니다만 개인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이기주의로 변질되고 말아요. 같은 미국 땅에서 살면서 A지역은 한나라당, B지역은 민주당 이런 식으로 재단되고 갈라지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 YS후원회장까지 지내신 분이 재외국민 투표권을 걱정스럽게 보다니 의외입니다.
“YS가 당선되고나니 날개를 단 기분이었어요. 귀국하면 어떻게 알았는 지 김포공항에서부터 자청해서 에스코트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나 여기저기서 청원이 숱하게 오지 않나. 그러던 차에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정황상 당선 가능성이 높았지만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 ‘떼어 놓은 당상(堂上)’을 스스로 포기한 꼴인 데,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선거비를 마련하려면 제가 미국에서 모은 재산을 처분해야 하잖아요. 간단하게 결정짓기 힘들더군요. 고민이 많았어요. ‘내 병원을 팔면서까지 본국에서 국회의원을 해야 하나’ 회의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본국에서 4년 동안 호강하고 큰 소리치겠다고 평생 살아온 미국 생활의 재미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지 않나, 결국 출마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지요. 돌이켜봐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는 건 외국에 있는 국민들이 본국 정치참여의 길이 열린 전기(轉機)인 데 뭐가 나쁘다는 것이죠?
“솔직히 참 곤혹스런 문제입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니까요. (이 때 기자는 몇 번이고 거듭하여 답을 달라고 보챘다. 이 회장은 한참을 뜸 들이다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그럼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본국 대선이 지나면 말이죠, 여의도 호텔들에서 우리 재미동포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대선이 치러지는 5년마다 빚어지는 현상이에요. 이 분들은 몇 개월씩 호텔방에 묵으며 본국에서 힘 좀 쓴다는 분들과 국회의원을 만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재미동포들을 욕 먹이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 대체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까?
“가령 K라는 재미동포가 있다고 칩시다. 사람은 분명 같은 사람인 데 희한하게 본국에서 보는 K와 미국에서 보는 K의 이미지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이 본국에서는 화려한 경력자로 포장돼 있어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몇달 씩 자기 일을 내팽개쳐놓고 있을 수 있을까요? 직장에서 해고되든가 사업주라면 경영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실제 제 주변에서 미국에 홀로 남은 부인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세탁 일을 해서, 혹은 병술 팔아 힘들게 번 돈을 본국에 간 남편 뒷바라지에 쓰는 걸 봤어요.”

▼ 재외국민들의 해외선거운동의 효시였던 분이 그런 비판하는 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요?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전에 제가 아는 친구가 본국에서 여기저기 로비한 끝에 국내 기업 몇 개에서 고문직을 맡는 걸 봤습니다. 그거 낙하산 취업이잖아요. 본인은 득을 봤지만 그건 해외동포사회 전체를 욕 먹이고 재미동포 이미지를 떨구는 일입니다. 제가 본국에서 정치하기를 포기한 건요. 심하게 말하면 ‘인생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란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아시다시피 한국의 정치는 권모술수에 능해야 하고 정치자금을 모으는 일조차 어두운 면들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럴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반면 미국은 정치자금을 자유롭게 끌어모으는 대신 500달러 이상의 기부금은 예외 없이 신고합니다. 용처까지 세세하게 공개하니 ‘미국정치는 클린’ 소리를 듣는 겁니다.”

막 올린 ‘미주한인노인회 네트워크’
4월에 미주지역 전국노인대회 개최


재외국민 참정권 이야기가 길어지자 이 회장의 낯빛이 점점 일그러져 갔다. 본론인 노인 이야기로 돌아가자고 하니 이 회장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다시 특유의 열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미주한인노인회를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정비해가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중이다. 미주한인노인회는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라는 공식명칭에서 드러나듯 대한노인회의 해외지부다. 지난해 10월 24일 미주한인노인회 회장에 취임한 데 이어 지난 2월 6일 LA의 JJ그랜드호텔에서 공식출범을 선언했다. 불과 석달 사이 이 회장은 미국 전역을 돌며 동포 노인들을 찾아다닌 끝에 LA, 뉴욕, 샌디에고, 시카고, 댈러스, 애틀랜타, 콜로라도 등 7개 지역 미주노인회를 조직에 참여시켰다. 앞으로 알래스카, 하와이, 메릴랜드 등 나머지 18개 지역 노인회를 모두 통합해, 오는 4월경 미주지역 전국 노인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에 비춰볼 때 처음부터 그림을 크게 그리면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성공의 관건은 조직원들을 단합하게 만드는 겁니다. 서로 힘을 합해 가능한 일부터 찾고, 자기 일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직의 정신에 공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결속력도 커지고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조직 경영의 달인답게 밑그림들을 치밀하게 구상해놓은 듯 보였다. 미국 주류사회와 공공조직과의 연대까지 모색하고 있었다. 지난달 5~6일 미주한인노인회 출범식에는 LA시 노인국장이 참석했는 데, 이 역시 사전 교섭의 결과로 이미 시 당국으로부터 적극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한다.

“1992년 LA폭동 때가 떠오르더군요. 그 때는 정말 한숨 쉬는 것 밖에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한인 옷가게와 슈퍼마켓이 약탈되는 장면을 길 건너편에서 경찰들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까요. 기가 막혔지만 그게 현실이었어요. 우리 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 때 재미동포들 대오각성(大悟覺醒)했습니다. 현지 사회와 공존·공영하며 사는 것, 미국 현지에서 정치력을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 지 절감했어요. 지금은 한인 가게에서 신고가 접수되면 당장 경찰들이 출동해 도움을 줍니다. 노인 문제도 우리 한인끼리 친목을 다지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미국 사회에 도움을 주는 일이어야 하고 그들의 협력을 받아내는 게 핵심적인 관건이에요.”

조직은 서서히 갖춰져 가고 있으나 미주한인노인회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지 결정한 게 없다. 그러나 목표 만큼은 분명하다. 한인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한·미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해 미국 현지 시민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LA시 노인국과 협의해보니 저희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시와 연계해 프로그램들을 개발해나갈 것입니다. 한인노인들이 봉사를 열심히 하다보면 미국의 주류들도 ‘코리안 할머니·할아버지 넘버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라 믿습니다.”

30~40년 전 미국에 온 이민 1세들은 코리아타운을 일궈내고 보니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버렸다. 스포트라이트가 차세대들에게 향하면서 1세들은 ‘뒷방늙은이’로 전락하거나 방치됐다.

효(孝)를 한자어 그대로 풀이해보면, 아들(子)이 늙은(老) 부모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아들 손자들이 어르신들을 업어주는 건 한민족이 세계에 자랑하는 아름다운 전통문화다. 노인들이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주고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건 그들의 후손인 2~3세들의 몫이다. 효(孝)의 전통을 지키는 건 민족정체성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민족정체성을 힘주어 말하잖아요. 그 장본인들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1세 어르신들은 살아있는 한민족의 뿌리입니다. 그분들은 민족의 얼과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관장(총영사)이 현지 노인회에 들러 인사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런 전통을 이제부터 만들면 좋겠습니다. 저는 노인들이 과거를 미래로 이어주는 역량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당장은 빗자루 한 자루씩 들고 거리 청소부터 할 겁니다. 열심히 청소한 다음 선지해장국 나눠 먹으면 정말 꿀맛이겠죠?”

대담ㆍ정리/김명신 편집위원
사진/최유정 기자

    이영송(李榮松)회장은?

    1943년 8월생, 본적 서울 용산                               
    196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1975년 도미(渡美)
    1978년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 치과대학 졸업
    1984년 L.A.올림픽 라이온즈클럽 회장
    1988년 L.A.상공회의소 회장, 남가주상공인 총연합회 회장
    1990년 재미한인치과의사협회 회장
    1991년 민주산악회 미주회장
    1992년 김영삼 대통령 후원회 미주회장
    1995년 한미정경협회 회장
    1998년 민주평통 L.A.지부 회장
    2008년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 회장
    현재 한미문화교류재단 회장, 캘리포니아패밀리덴탈센터(치과) 원장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종로19(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동 1118호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아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 | 편집인 : 이구홍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혜민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