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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애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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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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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 / 도쿄 총국장

일, 경기회복으로 고용 크게 개선 / 일자리를 직접 목표로 삼기보다
지속적인 거시정책 잘 쓴 덕분 / 문 정부, 교조주의 털고 방향 바꿔야

6월의 도쿄, 긴 팔 차림이 부담스러운 날씨다. 그런데도 거리엔 보기만 해도 더운, 검은색 정장의 앳된 젊은이가 눈에 많이 띈다. 1일에 시작하는 대기업 면접을 보거나 채용 설명회를 찾아다니는 대학 4학년생들이다. 취직활동을 한다고 해 이들을 취활생(슈카쓰세이), 이들이 유니폼처럼 입는 옷을 ‘리크루트 슈트’라 한다.

요즘 일본에서 취업이 잘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리크루트웍스연구소에 따르면 기업의 내년 대졸 예정자 구인 총수는 81만4000명. 그에 비해 구직자는 43만2000명이니 38만2000명 모자란다. 이 부족분은 한국의 20대 실업자 전체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녀 취업 문제로 연락해 오는 지인이 부쩍 늘었다. 한국선 취업 어려우니 이제라도 애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하나 하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통계만 보면 일본 대졸자들은 가만있어도 기업들이 모셔가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일본 취활생들에게도 취업난은 여전하다. 일자리가 없어 어려운 게 아니라 그 많은 일자리 중에서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마찰적 프로세스’라 한다.

기업들은 3월 1일 모집 사이트를 일제히 오픈하면서 채용을 시작한다. 5월까지 서류심사·적성검사 등에 이어 6월에 면접이 진행된다. 이게 게이단렌(經團連) 가이드라인인데 잘 지켜지진 않는다. 4~5월 세미나·좌담·교류회라는 이름으로 실질적 면접을 하는 곳이 많다. 이때 합격자들이 어느 정도 추려진다. 5월 내정률이 이미 40%를 넘었다. 언론에선 이를 ‘플라잉(부정 출발) 선발’이라고 비판하지만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직도 대다수의 취활생들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개 20~40곳 정도에 원서를 낸다. 기업들은 불합격자에게 ‘앞으로의 활약을 기원합니다’는 메일을 보낸다. 취활생들은 불합격을 ‘기원당했다’ ‘기원메일이 왔다’고 한다. 기원당하는 취활생이 많다는 건 넘치는 일자리 속의 취직난을 보여준다.

이를 부추기는 게 대기업 쏠림이다.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의 구인배율은 9.91이다. 기업이 10명 구하는데 딱 한 명이 응시하는 꼴이다. 반면 5000명 이상 대기업의 구인배율은 0.37로 역대 최저다. 구인은 5만1000명인데 구직자는 13만9000명이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사 2086곳 중 5000명 이상 대기업은 500곳이 안 된다. 이곳에 몰리는 취활생들에게 취업문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다 수월한 것도 아니다. 기업별로 소수를 뽑다 보니 미스매치가 자주 일어난다. 4~7명 뽑는 도쿄의 한 제과회사엔 1만6000명 넘는 취활생이 몰렸다.

불투명한 학력(學歷) 차별도 있다. 대학 간판을 기준으로 거른다고 해 학력 필터라 한다. 대학별 쿼터를 주거나 어느 수준 이상의 대학만 타깃으로 채용하는 식이다. 한 여론조사에선 학력 차별을 느낀다는 취활생이 75.7%에 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취업빙하기를 헤매는 한국 청년들에겐 사치다. 일본에선 눈높이 적당히 낮추고 준비만 잘하면 기회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게 아베노믹스 효과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아베 정부가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겠다고 장담한 적은 없다. 금융완화와 재정정책으로 경제 전체의 수요가 공급을 웃돌도록 거시정책에 주력했다. 과열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고압경제 정책이다. 경기회복이 목표고, 일자리는 그 효과다. 일자리를 먹고사는 방편으로 본다면 나누거나 퍼주거나 하면 된다. 지금 우리 정부 정책이 그렇다. 그에 비해 일자리를 부가가치 창출 유닛으로 본다면 처방이 달라진다. 기업들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한창 일을 배워야 할 청년들이 몇 년간 직장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면 계층하락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그 고위험군이 40만 명이다. 이대로면 소득격차가 갈수록 커진다. 일본에서도 취업빙하기에 직장 못 잡은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나이 들어서도 곤궁하게 살고 있다. 이른바 ‘로스제네(로스트 제네레이션)’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로스제네는 사회경제의 발목에 묶인 무거운 납덩이다.

일자리를 늘리려는 열의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는 것은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하는 게 해결의 출발점이다. 마침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행사에 강연하러 곧 도쿄에 온다. 행사장에만 있지 말고 거리를 돌아다니길 바란다. 리크루트 슈트 차림의 젊은이,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식당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상가, 올림픽을 준비 중인 공사현장…. 경기회복의 온기를 실감할 수 있는 볼거리가 많다. 이 정부 이너서클의 교조주의 탓에 얼어버린 현실감각을 해동시켜 가길 바란다. 더 늦으면 정말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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