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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을 키운 세 스승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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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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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 논설위원·시인

   
 

전 국민 애송시 1위,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인, 노래로 불려진 시가 가장 많은 시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시인…. 한국 현대시 110주년을 맞은 올해도 김소월은 여전히 사랑받는 시인 1위에 올라 있다. 그의 문학적 자양분은 이 땅의 모든 사람과 자연이겠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스승을 꼽으라면 세 명을 들 수 있다.

유년기 소월에게 문학적 세례를 준 사람은 같은 집에 살던 숙모 계희영이었다. 숙부가 사업하느라 늘 집을 비우는 바람에 혼자 있던 숙모는 어린 소월에게 수많은 민담과 전설, 문학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월은 틈날 때마다 찰싹 달라붙어 얘기를 더 해 달라고 졸랐다. 이런 풍경은 10년 동안 이어졌고, 훗날 소월의 시로 되살아났다.

'접동새' 이야기 들려준 숙모

평안북도 박천 진두강가에 살던 오누이가 죽어 접동새가 됐다는 설화를 담은 시 ‘접동새’도 숙모한테 들은 얘기를 모태로 썼다. 남이 장군 스토리를 듣고 쓴 시 ‘물마름’ 또한 그랬다.

소월을 본격적인 시의 세계로 안내한 스승은 오산학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김억이었다. 김억은 국어 시간에 글짓기 숙제를 검사하다가 소월의 시 ‘애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단번에 재능을 알아본 그는 방과 후에 남아 소월에게 글을 계속 쓰도록 했다. 마침내 1920년 소월은 김억의 소개로 《창조》에 시 ‘낭인(浪人)의 봄’ 등 다섯 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소월은 2년 새 50여 편의 시를 쏟아내며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다. 1925년에는 ‘못잊어’ ‘엄마야 누나야’ 등 127편을 담은 시집 《진달래꽃》을 펴냈다. 이때 김억은 자비를 털어 시집을 출판해 줬다. 그런 김억에게 소월은 말 못할 속내를 털어놨다. 죽기 얼마 전에 보낸 편지에서도 ‘세기는 저를 버리고 혼자 앞서서 달아난 것 같사옵니다. 독서도 아니하고, 습작도 아니하고, 사업도 아니하고, 다시 잡기 힘드는 돈만 좀 놓아 보낸 모양이옵니다. 인제는 또 돈이 없으니 무엇을 하여야 좋겠느냐 하옵니다’고 했다.

오산학교에서 만난 거인들

또 한 사람의 스승은 오산학교 교장이던 독립운동가 조만식이었다. 소월은 1915년 입학 후 3·1운동으로 학교가 폐쇄된 1919년까지 김억과 조만식의 가르침을 받으며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향토 영역에 머물렀던 의식도 민족과 국가로 넓혔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현실을 다룬 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등이 그런 바탕에서 나왔다.

소월은 조만식을 사상적 스승으로 대하면서 그의 영문 이름을 딴 시 ‘JMS’를 쓰기도 했다. 제목에 본명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일제의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오산 계시던 제이 엠 에스/ 십년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근년 처음 꿈 없이 자고 일어나며./ 얽은 얼굴에 자그만 키와 여윈 몸매는/ 달은 쇠끝 같은 지조가 튀어날 듯/ 타듯 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이들 세 스승 외에도 소월 시에 남다른 숨결을 불어넣어 준 ‘숨은 뮤즈’가 따로 있었다. 첫사랑이자 한동네 소녀인 오순. 소월은 같은 반이었던 오순과 친해져 옥녀봉 냉천터에서 자주 만나곤 했다. 함께 피리를 불거나 노래를 부르며 산책하기도 했다. 그때의 추억으로 빚은 시가 ‘풀따기’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이다.

둘의 인연은 오순이 19세에 시집을 가면서 끊어졌다. 오순은 3년 뒤 의처증이 심했던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22세로 죽고 말았다. 오순의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온 소월은 오열하면서 시 한 편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로 시작하는 ‘초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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