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 논설위원

한-이,건국·전쟁·안보 닮아/이, 敵軍 봉쇄-友軍 협력 전략/일괄 해결 대신 위기관리 집중
이·美 전략동맹 전 분야 확대/정파적 대북 접근법 탈피해/이스라엘式 외교로 北核해결

중동의 아랍국가들에 에워싸인 이스라엘은 건국 과정이나 이후 경제건설 과정에 한국과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아는 민족이라는 점, 유엔 결의에 힘입어 1948년 건국된 후 전쟁으로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섰었다는 점, 그렇지만 전 국민이 똘똘 뭉쳐 경제를 일궈낸 덕분에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점 등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 뒤처졌지만, 일관된 개방정책에 힘입어 2017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2000달러를 기록, 3만 달러 수준인 한국을 크게 앞섰다. 양국은 안보 환경도 유사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국주의 외교·안보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보다 직접적으로 테러에 노출돼 있다. 가자지구에선 하마스 무장세력이 연과 풍선을 이용해 테러 공격을 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매주 100여 발의 로켓을 이스라엘로 발사한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사태가 이스라엘에선 일상인 것이다.

지난주 광복절 주간에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북부 골란 고원과 남부 가자지구 인근 지역을 두루 방문해 현장의 군 출신 인사와 정치인, 학자들과 토론하면서 이스라엘의 발전엔 치밀한 생존 외교가 밑바탕이 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첫째, 반(反)유대 테러세력은 철저히 고립시키고 우호세력과 연대하는 전략이다. 이스라엘은 일관된 테러 불용(不容) 원칙으로 하마스를 압박하며 경제제재를 지속하고 있다. 가자지구 봉쇄가 200만 주민의 인도적 재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가자지구에 수십억 달러 투자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그래 봤자 하마스 테러에 쓰일 것”이라며 봉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온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웨스트 뱅크에선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 전략은 외교정책에도 관철된다. 이스라엘을 없애버리겠다는 이란의 시아파 신정 체제와는 무한투쟁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요르단 등 수니파 온건 국가와는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란 및 시리아와 레바논 시민들과의 연대 노력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오래전부터 접경지역 병원에서 레바논 및 시리아 내전 피해자들을 국비로 무료 치료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속되는 내전에 노출된 레바논과 시리아의 주민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이스라엘 국경까지만 가면 이스라엘 방위군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광범하게 퍼져 있다고 현지 의료진이 밝혔다.

둘째, 안보 위협을 정상 간 국제 합의로 단번에 풀려는 ‘솔루션 집착증’에서 벗어나, 장기적 위기관리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집권 리쿠드당 의원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무리하게 오슬로협정과 같은 국제합의를 끌어낸 뒤 갈등이 더 커졌다는 데 공감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괄 타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현재의 위기를 관리하며, 극단파를 고립시키는 해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과의 동맹을 군사 부문에서 전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파의 하이테크 기지에서 만난 이스라엘 국방부 인사는 핵전쟁 때 필요한 방사능오염 치료제 개발이 완성 단계라면서, 미 국방부 등과의 협력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재미 유대인들은 미 유대인협회(AJC)를 통해 이스라엘을 위한 공공외교를 미국 및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고 있다. AJC는 미 총기협회(NRA)에 이어 영향력이 큰 로비 단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엔 외교 전략이 없고 오로지 국방 전략만 있다’며 과도한 안보 집착증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키신저 전 장관은 현상만 봤을 뿐, 그 밑에 숨은 전략은 간과한 것 같다. 이스라엘에 외교 전략이 없었다면 미국이 어떻게 매년 30억 달러씩 무상원조를 하고,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겠는가?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키신저식(式)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외교로, 동맹을 홀대하면서 그저 막연한 대북 우호감에 입각한 대북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방위 동맹을 통해 적을 고립·압박하고, 친구를 늘리는 이스라엘식 외교 전략이 필요한 건 정작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