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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오부치 선언 20년 … 다시 겹눈을 갖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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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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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 /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미·중 패권 경쟁, 저출산 고령화의 공통 과제 직면한 한·일
전략적 환경 변화 반영한 새 비전 마련해 상생의 길 찾아야

한·일 현대사에서 1998년은 각별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양국 간 신시대를 열었다. 선언은 전면적 교류·협력의 장전(典章)이다. 정치·경제·안보·문화가 망라됐다. 함께 채택한 43개 행동계획엔 개발도상국 원조 분야의 협력도 들어갔다. 현재의 한·일 관계에서 떠올리기 어려운 공조다. 선언은 양국 국교정상화의 ‘65년 체제’ 결함을 보완했다. 일본 총리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처음으로 담았다. 한국이 65년 체제에서 관철하지 못한 부분이다. 선언은 전후 국제사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평가했다. 두 가지는 미래 지향 행동계획의 토대가 됐다. 당시 김종필·오부치 총리 참석 각료 간담회는 한·일 밀월관계를 상징했다.

김대중 정부에 한·일 관계 개선은 동북아 냉전 해체 구상의 일환이었다. 대일 역사 화해를 남북 교류·협력과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으로 이어갔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도 시야를 넓혀보면 동북아 화해 기류의 산물이다. 김대중 정부는 여론에 이끌리지 않고 선도했다. 저항이 적잖았던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을 풀었다. 대일 관계를 외환 위기 극복에도 활용했다. 공동선언은 오부치와도 떼놓을 수 없다. 오부치는 자민당 다나카파의 마지막 총리다. 다나카파(다케시타파→오부치파)는 70년대 이래 자민당을 주물렀다. 미·일 동맹과 근린 외교를 대외 전략의 두 축으로 삼았다. 오부치가 그린 국가상은 부국유덕(富國有德)이었다. 그의 자문기구는 인교(隣交)와 열린 국익을 주창했다. 김대중·오부치 시기는 한·일 관계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그 이래 한·일 관계는 휘청거렸다. 영토와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두 사안은 한·일 관계의 부분이 아닌 전체가 됐다. 한국 정치는 여론에 굴복했고, 때론 이용했다. 시민단체 입김은 커졌고, 과거사 성역이 생겨났다. 여기에 사법이 외교의 영역에 개입했다. 국가의 연속성·일체성을 도외시하는 판결도 나왔다.

일본도 변했다. 자민당 정권은 미·일 동맹 우선의 후쿠다파(모리파→호소다파)로 넘어갔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를 빼고 아시아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회의 저류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버블 붕괴, 장기 저성장, 중·일 GDP 역전으로 부국유덕은 옛말이 됐다. 전후 세대의 역사 부채 의식도 엷어졌다.

그새 세계도, 주변도 변했다. 미국의 글로벌 위상이 축소하고 중국이 급부상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무역 전쟁은 패권 싸움이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고, 비핵화 마라톤 게임에 나섰다. 게다가 동맹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불가다. 한·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환경에 끼어 있다. 한·일은 전통적 한·미·일 3각 연대와 한·중·일 협력체의 교집합이기도 하다. 자유·민주·법치의 가치도 공유한다. 모두 무역 입국(立國)이다. 내부적으론 저출산·고령화, 지방 소멸의 과제를 안고 있다. 양국은 안팎에서 공통의 도전에 직면하지만, 접착력은 약하다. 서로를 보는 눈높이가 다르다. 한국은 주로 대북 구상과 과거사 연장 선상에서 일본을 조망한다. 일본은 세력 균형 관점에서 한국을 보기 일쑤다.

다음 달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0년을 맞는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은 어정쩡하다. 한발은 과거에, 다른 한발은 미래에 가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도 낮아 보인다. 정치권에서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소리가 높지만 공허한 이유다. 아베 신조 내각은 대국 외교의 경향이 강하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도국에서의 중·일 인프라 공동 개발이 가시권이다. 한·일 공동선언의 정신이 중·일 간에 구현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새로운 한·일 관계는 교류 확대의 기능주의적 접근으론 불충분하다. 전략 환경 변화를 반영한 새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양국에 상생의 겹눈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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