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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함께한 일본 여행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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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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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 전 국무총리

   
 

우리에게는 한국 침략의 원흉이지만 일본에서는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일본인들이 매년 추모하는 법요행사를 열고 여기에 참석한 두 나라 사람들이 함께 한일친선교류행사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금년에도 그 행사가 9월 9일 일본 미야기현에 있는 다이린지(大林寺) 등지에서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명을 받은 당시 뤼순(旅順) 감옥의 간수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일본인들에 의해 수십 년간 계속된 행사인 만큼 그곳을 찾은 우리 일행에게도 부담이 없고 즐거운 행사였습니다. 이어서 도쿄에서 안중근 연구자 등 일본인들과 함께한 친선 행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9월 11일 고치(高知)시에서 `한일우호협력과 동양평화사상`이라는 제목의 강연 행사는 달랐습니다. 일본 땅에서 안 의사에 대하여 알지 못하거나 그저 자기네 총리를 사살한 흉한 정도로 알고 있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치현 일한친선교류회`의 초청 강연을 부탁 받고서 강연 주제를 과감하게 안중근 의사로 잡았습니다. 고치가 안 의사와 인연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강연 제목을 미리 알렸더니 제목에서만은 `안중근`을 빼 달라고 하여 이를 받아들여 제목을 위와 같이 정하였습니다. 고치는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접촉하였던 많은 일본 관헌들의 고향입니다. 안 의사를 취조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뤼순 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우지히토(平石氏人), 검찰관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淸四郞), 관선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 관동도독부 경무과 경부 야기 마사노리(八木正禮), 재판을 취재한 도요신문 통신원 고마쓰 모토고(小松元吾) 등 모두가 고치현 출신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고치 출신 인사들이 뤼순에서 안 의사와 인연을 맺었는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들은 옥중에서 안 의사에게 받은 유묵들을 잘 간직하다 한국에 반환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 의사의 참모습을 알리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미즈노 변호사는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나온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강연에서는 이러한 인연을 소개하면서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행위가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의거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안 의사가 내세운,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을사보호5조약과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독립을 요구하는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정치체제로 바꾼 죄,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통용시켜 한국 경제를 교란한 죄,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등 이토의 15가지 죄목을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인 죄와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를 제13, 제15의 죄목으로 주장하는 것에서 보듯이 안 의사는 일왕을 존중하였으며, 처형 직전 한일 친선과 동양 평화를 당부하는 유언을 하였고, 유묵 '일한교의선작소개(日韓交誼善作紹介·한일 친선은 서로를 잘 아는 데서 생긴다)'처럼 그 내용뿐 아니라 어순에서도 일본을 앞세워 일본을 배려하였다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는 양국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한일관계 정립에 결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임을 강조하며 안 의사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고치현의 여러분이 안 의사를 이해하고 알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하였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어느 누구도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몰랐던 안 의사의 이토 처단 이유나 평화사상을 알게 되었다며 고마워하였습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는 감정 대립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임을 실감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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