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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과 매천 황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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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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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 다산연구소 이사장ㆍ우석대 석좌교수

   
 

가장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군대가 강하고 먹을 것이 풍족한 나라가 아니라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바로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압축해서 말하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니, 백성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면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조선왕조 끝자락에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4∼1907)은 학자로, 의병장으로, 척사위정파의 효장으로 민족정기를 철저하게 수호하다 갇혀있던 일본 대마도에서 단식하다 병이 들어 순국한 투철한 독립 운동가였다. 포천 출신이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은 전라도 광양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지도 못하고 겨우 진사(進士)로 끝난 선비였으나 강추위에 피어나는 매화꽃처럼 매서운 의기를 지닌 지사(志士)로, 뛰어난 시인으로, 나라가 일본에 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애국지사였다. 면암이야 문과에 급제하여 판서의 지위까지 오른 중앙의 고관이었지만, 매천은 하시골 선비로 신분의 차야 컸으나 의기가 서로 통했던 의인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말의 역사를 가장 바르게 기록했다는 ‘매천야록’은 어떤 인물도 하자(瑕疵)를 지적받지 않은 사람이 없어, ‘매천필하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라는 말이 온 세상에 전해질 정도로 매섭고 무서운 책이었다. 그러나 의기가 상통하고 품은 뜻이 같았던 이유로, 매천은 면암에 대한 하자는 전혀 지적한 바가 없고 오직 나라 전체에 면암 한 사람이 있을 정도라는 전제 아래, 면암이 행했던 옳고 바른 일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중국의 두보(杜甫)는 ‘팔애시(八哀詩)’를 지어 옳고 바르게 살다간 여덟 사람을 애도하는 시를 지어, 그 여덟 사람을 세상에서 유명한 인물로 추앙하게 하였는데, 매천은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망했다면서 의롭게 자결한 충신들을 추앙할 목적으로 오애시(五哀詩)를 지었다. “을사늑약으로 조병세ㆍ민영환ㆍ홍만식 3공(三公)이 죽었다. 소식을 듣고 나는 감격적으로 사모하여 두보의 ‘팔애시’를 모방하여 시를 짓는다. 최면암에 대해 그냥 (죽지도 않았는데) 언급한 것은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고, 영재 이건창(이미 죽은 사람)을 언급한 것은 오늘날 인물이 아주 적기에 추억해 본 것이다”라고 말하여 국란에 자결한 고관 세 분 이외에 이미 죽은 영재 이건창과 아직 죽지 않은 면암 최익현을 함께 넣어 5명을 맞춰 ‘오애시’로 죽음을 애도한다고 했다.

살아있는 면암을 애도한 시를 보자. “원컨대 그대께서는 어서 자결하시어 저 같은 사람의 의혹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소서(願公早自愛 少解小子惑)” 이런 기막힌 시가 어디에 쉽게 있을 수 있겠는가, 벼슬도 높고 나이도 훨씬 많으며, 세상에 이름도 높은 대선배에게 빨리 자결하여 후배들의 의심을 풀어주라니, 세상에 죽으라고 졸라대는 시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면암 최익현은 그만큼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학자요, 정치가요, 의병장이었다. 면암의 곧고 바른 행적을 익히 알고 있던 매천은 그런 국난에 살아 있을 면암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그 무섭던 시절에 대원군의 독재를 강력히 비판하였고, 고종 10년 마침내 강력한 탄핵 상소로 대원군을 하야시킨 장본인이 면암인데다, 을사늑약 전후 계속 상소하고 항의하면서 5적을 척결하자고 주장하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고 있는 면암의 마음을 매천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자신도 반드시 죽겠다는 각오가 너무나 굳었기 때문에 면암에게 자결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바로 면암에 대한 굳은 신뢰와 자신의 마음을 굳힌 심정이 겹쳐, 그는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대선배에게 빨리 자결하라고 재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 정치하는 애국자라는 사람들이 면암처럼 백성들에게 확고한 믿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입만 열면 거짓말에 앞과 뒤가 언제나 다른 행동,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을 쥐고 재산만 모으면 최고라는 생각으로 남을 속이려는 사람들은 매천은 면암을 죽으라고 독촉할 자격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천하를 쥐고 펴며 호령하던 대원군을 하야시킨 강골의 면암은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여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내용대로 조약을 파기하지 않으려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달라는 무서운 기개였다. 그렇게 면암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만을 바라보고 살았었다. 그런 믿음직한 면암이었기에 매천은 그를 믿었고, 그를 따라 자신도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면암에게 죽으라고 권장할 수가 있었다.

매천의 믿음대로 면암은 대마도 감옥에서 단식하다 병으로 운명하고 말았다. 매천은 천리 길인 면암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제문을 지어 죽음을 슬퍼하고 찬양하였고, 만시(挽詩)를 지어 그의 일생을 탁월하다고 추앙하였다. 망국의 소식을 듣자 매천 또한 면암의 뒤를 따라 독약으로 자결했다. 면암과 매천은 망국을 당해 ‘조선혼’의 상징으로 민족정기를 지켜주는 위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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