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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며
김삼오  |  ok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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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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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새해 결심 (New Year’s resolution). 한 때 고국에서는 새해 벽두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지 않고 썼던 말들이다. 우리는 해외에 나와서도 그저 입에 붙은 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그대로 써도 새해 결심이 뭣입니까 하고 묻거나, 과거처럼 신문의 토픽으로 올리는 일은 잘 못 본다. 이번 신문의 지면도 그럴 것 같다.

더위에 헐떡거려야 하고 가뭄과 이상 기온에 지쳐버린 판국에 새해 결심이고 뭣이고가 없어 그럴까. 이번에도 ABC방송이나 채널9방송 화면에 나오는 주요 장면은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궈지는 산불이 주로일 것 같다.

고국을 떠나기 전, 우리들이 흔하게 듣고 말하던 새해 결심의 레퍼터리는 넓었다. 술 또는 담배를 끊기로, 다이어트를 하기로,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더 하기로, 교회를 나가기로, 결혼하기로, 가족간 화해를 하기로, 심지어 올바르게 살기로 등등이다. 그러나 작심 3일이라고 잘 지켜지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게 ‘새해 결심’이 사라져버린 이유일까.

이번 밖에서 또 한번의 한해의 끝자락을 보내면서, 굳이 새해 결심이라고 할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해본 테마 하나가 있어 써보려고 하는데 딱딱해서 연말연시의 정서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때는 한번 더 사회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 테마는 행복과 부와 명예와 그에 대한 사회압력의 방정식이다. 혼자서 풀어보려고 늘 고민해온 숙제여서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만, 우연히 한 무명의 목사가 쓴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한가지 좋은 사례를 만난 것 같아, 먼저 글 말미만을 여기에 옮기고자 한다.

그 목사는 “여보, 이제 우리 입에 풀칠할만하잖아?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제부터는 너무 어려워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망가진 사랑 그걸 회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자고. 돈은 겨우 살아갈 정도만 되면 행복을 위한 제 역할을 다한 거라고” 라고 한 사모의 말을 인용하고 “역시 아내는 나보다 현명하다”라는 말로 그는 끝맺었다.

부, 권력, 명예, 저명성

긴 인생을 앞에 둔 젊은이는 물론, 거의 모든 경제활동 인구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단연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내가 언급한 사회가 주는 압력이며 정신적 부담이다. 여기에 동서고금 예외가 없는 것 같다. 돈은 wealth (부), 권력은 power, 명예는 prominence (저명성)란 말로 영미 언론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돈은 권력과 사회적 인정을 의미하는 저명성, 즉 출세로 가는 티켓이 아닌가 싶다. 영미인들이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honor (명예) 대신 prominence를 쓴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전자는 지조, 양심, 인격 등으로 성취하는 명예일 텐데 이걸 탐내는 한국인이 어디 있나. 그보다 돈으로 저명성을 얻는 게 빠르다. 모두가 돈에 목을 메고, 돈의 노예가 되어 가는 이유다. 지나고 보니 우리 모두가 이 잘못된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먹고 살기 위하여 목사 부부가 한때 상실했던 사랑 말고도, 우리가 돈과 권력과 저명성을 향한 지름길을 달리느라 잃어버리는 삶의 정말 존귀한 가치들이 많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불법자금과 뇌물 수수, 살인, 강도 (그 외 비리 리스트는 길다) 등으로 걸려 검찰에 불려 다닌다면 물론 그러하다. 어디 가치뿐인가. 자신 뿐만 아니라 남의 귀한 생명까지도 뺏는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매년 자살하는 숫자가 15,000명 선, OECD 국가 중 1위다.

페이비안 사회주의

중국과 동남아 국가로 마약을 밀수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난다. 대부분 돈이 유죄다, 그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화재, 수재, 폭발, 매몰 사고도 대부분 인재이고 그 뿌리를 따져 들어가보면 양심없는 정치인과 부자와 CEO들의 과욕과 돈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한 돈이 아니다.

대안은 분명하다. 술 권하는 사회, 도박 권하는 사회를 지탄하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돈과 권력과 저명성을 향하여 숨차게 몰아붙이는 사회압력은 누가 만드는가? “돈은 겨우 살아갈 정도만 되면 행복을 위한 제 역할을 다한 거라구”라고 말하면 바보고, 많이 벌수록 똑똑하고 출세한 사람으로 쳐주고 부러워하는 우리 자신의 의식과 태도가 만든다.

너무 잘사는 사람과 너무 못사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페이비언 (Fabianism) 사회주의 유산을 받은 호주 (국제경쟁의 압력 아래 이게 퇴색하고 있긴 해도)에 살게 된 우리들이 아닌가. 순리대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길은 ‘돈은 겨우 살아갈 정도만 되면 행복을 위한 제 역할을 다한 거라구’란 평범한 지혜를 실천해보는 것이다. 새해에도 또 그 앞으로도 말이다. 

분단의 원죄

지금 한국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다. 머리 좋고 부지런한 민족이 경제를 일으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미 그건 증명되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법과 제도의 개혁, 어느 것을 해봐도 이미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과욕을 부리고, 똑똑한 사람은 모두 분수를 맞지 않는 자리를 좇아 뛰어 다닌다면 달라질 건 없다. 분단의 원죄가 바로 그것이었다. 태국기 또는 촛불을 들고 나서기 전에 이것부터 걱정을 해야겠다. 그래야 나라와 민족이 선전하고 발전하고 평화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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