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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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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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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 / 재중동포

성인자녀와 백발부모의 사이에 끼여 있는 50, 60대. 백세시대 절반을 접고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의 세대좌표 역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중간 그 자리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온전히 나 자신 뿐만이 아닌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어느 자식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인간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 자식으로 그리고 부모로 사는 것도 처음이라 정답이 무엇인지, 그 정답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알쏭달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반성, 불안과 고민으로 골고루 어우러진 이런저런, 사연과 시비들 속에서 어렴풋이 그려지는 우리네 중년 그 삶의 모노그라프. 이제 더 늦기 전에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반백의 부모는 외국에서 일한지 어언 십수년, 한 푼이라도 아껴 쓰면서 힘든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자식 하나 때문. 다행히 부모가 곁에 없어도 삐뚠 길 걷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잘난 아들, 그게 더 기특하고 장하고 미안해서 뼈 빠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왔다. 여기까지는 부모 된 도리로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거라 치자. 문제는 대학 졸업후에도 마법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유학, 결혼, 집장만, 손자 돌봄의 얽히고설킨 실타래… 빠듯한 월급에 매달려 살아가거나 경제력이 없는 부모들에게는 더더욱 답답하기만 한 이 상황들. 그야말로 밑 빠진 독, 도무지 헤어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 기묘한 부모-자녀관계의 덫에 갇혀버린 것이 요즘 우리 중년들의 모습이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그만큼 성인이 되고 출가한 뒤에는 아들보다 부담이 적고 부모에게 살갑게 도움이 되는 자식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네 딸들은 얼마나 다를까. 온갖 정성을 다해서 잘 키웠다고 자부했더니 '신세대 여성답게' 남자와 똑같이 신혼집, 자가용 비용을 반반해야겠다며 어려운 부모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딸. 시부모보다 더 편하다는 구실에 반찬부터 자녀양육에 이르기까지 살림살이 전체를 친정부모에게 떠맡기면서도 이러쿵저러쿵 여러모로 마땅치 않은 딸. "자기 부모라서 믿어서" 더 거침없이, 더 서슴없이 내뿜는 가시 박힌 폭언들… 그래서 요즘은 며느리보다 딸 시집살이가 더 힘들다고 하는가.

물론 공부뿐만 아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란 자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을 둔 경우에도 사방천지로부터 소리 없이 죄여오는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 내지는 '부모다움'의 사슬. 형편이 모자라서 자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함이요, 형편이 되면서도 안 해주는 건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라. 그래서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제 풀에 찔려하고 분노하며 답답해한다. "키워주고 대학까지 보냈으면 됐지 어디까지 해줘야 해?", "우리 집 형편에서 더는 안 돼, 여기까지야", "이건 분명 좋지 않은 풍조야, 바꿔야 해!" 하면서들 말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 못된 것일까. 성인이 된 후에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캉가루족’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경기불황, 저임금, 고용불안과 취업난, 고물가 등 사회경제적 구조에 초점을 맞춘 담론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우리 가족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결혼=출산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으며 특히 농경사회의 가족에 있어서 자식은 생산노동력, 노후 부양자로서의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는 연로한 부모님 앞에서 제 자식을 예뻐하는 티를 내도 불손한 것이었고 가장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다른 식구들이 음식을 먼저 짚어도 안 될 정도로 철저한 위계질서가 지켜졌다. 자식들은 때가 되면 결혼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기본 도리였다. 요즘도 농촌에 가보면 노인협회의 가입연령이 50세로 되여 있듯이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50세만 넘으면 노인취급을 받고 환갑을 넘기면 생산노동에서 완전히 손을 뗐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더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되었으며 출산과 자녀 수 역시 자체조절 가능한 가족계획으로 탈바꿈했다. 한 구들에 올망졸망 아이들이 부모님을 둘러싸고 오순도순 시끌벅적 살아가던 풍경은 이미 옛말이 된지 한참. 집안행사에 어린 아이 몇 명 찾아보기 힘든 요즘 세월에 자식은 말 그대로 꼬마황제.

아이가 귀해진 만큼 이제 자식은 노동력이나 노후대비책이 아닌 정서적 애착과 애정의 대상으로서 그 가치를 재확립하게 된다. 아울러 부모는 학업은 물론이고 취업, 결혼, 손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성인기를 훨씬 지난 자식의 모든 생애과정에 밀착 관여함으로써 집값을 비롯한 물가의 폭등과 취업난 등 사회적 악재와 더불어 자녀세대의 실질적인 성인으로의 이행을 크게 지연시키고 있다. 덕분에 기약 없이 늘어진 우리네 중년기. 이제 50, 60대는 더 이상 대접받는 노인이 아닌 인생 제2라운드 육아 전에 출전하는 주력 선수들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다. 오늘날 '공부 잘하는 자식=잘 자란 자식'이라는 등식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이번 시험을 잘 치면, 중점고중에 붙으면, 중점대학에 붙으면…". 자녀에 대한 모든 관심이 공부에 집중되고 성적의 높고 낮음이 곧 금전적인 대가로 직결되며 반대로 정신적 소양이나 인성•사회성 교육에는 아예 뒷전인 부모들이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정서상 가족사이 돈 얘기는 왠지 불편하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돈이 먼저야? 자식이 먼저야?"… 자식을 위해서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희생하고 지원해야 '부모다운' 부모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담론들. 얼핏 들으면 나름 그럴 듯한 '부모다움'의 해석이고 척도인양 비춰지겠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세대가 겪는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그리고 이제 닥쳐 올 노후준비의 어려움들이 한가득 감춰져있다는 것.

탈무드에 “물고기를 잡아주면 아이가 하루를 살 수 있지만, 그물 짜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식을 무조건 감싸고 희생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켜가야 하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소중한 자식이기에 내 힘으로 일어서는 수고스러움과 즐거움을 알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떠나야 할 때 과감히 놓아주는 게 참사랑이 아닐까.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에게 준만큼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와 동거하면서 노후를 돌볼 것을 기대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시설이나 친구들과의 공동양노 등 다양한 방식의 모후생활을 구상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년세대에게는 또 연로한 부모님들이 계신다. 급격한 고령화로 크게 연장된 노후로 인해 아래위로 자식-부모-자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세월이 길어졌다. '더블케어(Double Care)', '트리플케어(Triple Care)'라는 개념까지 출현하듯이 그나마 전통적인 가족 관념을 어느 정도 소지한 마지막 세대로서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과 손자까지 챙겨야 하는 요즘 50, 60대 중년들, 그네들의 등골이 휘어간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부모로 산다는 것은 두렵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은 부모를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며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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