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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도 못 받는 ‘137년째 이방인’ 화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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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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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이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8월 31일. 냉방장치도 없는 서울 마포구의 월세 10만원짜리 쪽방촌에서 혼자 살던 유모(당시 72세) 할머니가 자신의 집 대문 앞에서 쓰러져 절명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의증. 평소 우울증과 고혈압, 당뇨 등 지병으로 고생했던 유씨가 더위에 기력이 떨어져 한동안 식사를 못한 채 시름시름 앓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유씨는 가난 탓에 평소 병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보건소에서 가끔 약만 탔다고 한다. 과거 서울 명동 대만대사관 구내식당에서 부엌일로 생계를 유지했던 유씨 부부는 1992년 한ㆍ중 수교에 따른 대만과 한국 정부의 단교 이후 일자리를 잃고 가난하게 지냈다. 남편이 2005년 사망하며 유씨는 더 깊은 빈곤의 수렁에 빠졌다.

#. 왕모(78)씨 모녀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단층 주택 마당은 주워온 폐지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지적 장애를 가진 딸(51)과 왕씨의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폐지 수집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폐지 값이 떨어지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폐지를 주워 동네 격을 떨어뜨린다’며 눈총을 줄 뿐이다. 민간 복지단체가 지난 설에 가져다 준 쌀은 모녀에게 가뭄의 단비 같았다.

유씨와 왕씨는 소득 수준만 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돼야 할 정도로 극빈층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복지 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유씨, 왕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지만,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대만 국적 화교(華僑)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확대,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ㆍ장애인연금 증액 등 ‘포용 사회’를 위한 정책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음에도 화교들은 여전히 포용의 대상이 아니다. 화교들은 말한다. “세금을 내국인과 똑같이 내는 만큼 적어도 준(準) 국민 대우는 해달라”고.

화교가 한국 사회에 터를 잡기 시작한 계기는 1882년 조선과 청나라 간에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다. 137년이 흐른 지금 화교들은 4대, 5대째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 넘어온 중국 국적의 조선족 등 신(新) 화교와 구분되는 이들 노( ) 화교 인구는 현재 1만5,000명~2만명으로 추산된다. 화교들은 자녀를 화교학교에 보내는 등 뿌리를 잊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이렇게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치르는 비용이 적지 않다.

   
▲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국내화교 인구-박구원 기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화교들

화교 노인들은 65세 이상 내국인 노인들과 달리 지하철 요금 면제가 일부만 적용된다. 예전엔 전혀 면제를 받지 못하다가 화교들의 요구로 서울시와 인천시가 2015년부터 서울지하철 1~9호선과 인천지하철 1호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주인인 코레일이 운영하는 1~3호선 일부 구간과 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등 구간은 여전히 무료 이용을 할 수 없다. ‘반쪽 짜리 경로우대’인 셈이다. 곽원유(郭元有ㆍ72) 한국화교협회 총무는 “실수로 무료 구간을 지나쳐 개찰구에서 화교용 노인 우대 교통카드를 댔더니 ‘이용할 수 없는 카드’라고 큰 소리로 기계음이 나온 적이 있다”며 “모욕감을 느낀 이후 우대 카드를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대씩 한국에 살며 세금은 남들보다 더 내면 더 냈지 덜 내지 않았는데 사소한 혜택까지 차별 받으니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화교 노인들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25만원씩 주어지는 기초연금 역시 받을 수 없다.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는 건 생계에도 위협적이다. 외국인 신분인 화교는 저소득층에 생계급여와 의료ㆍ주거 급여 등을 제공하는 기초생활보장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아무리 가난해도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화교 장애인도 차별에 노출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이후 2012년부터 화교와 같은 영주권자들이 장애인등록법상 장애인 등록 대상에 포함됐지만,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인연금 등 다른 법에 근거한 주요 혜택은 받지 못한다. 등록증을 받아 좋아진 점은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댈 수 있게 된 정도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화교 장애인들이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영주권(F5)을 취득하지 못한 채 거주목적 비자(F2)만 가진 화교는 장애인 등록도 할 수 없다. 한성화교협회의 왕애려(王愛麗ㆍ60) 복지부회장은 “골수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20대 화교가 장애인 등록을 받았다가, 나중에 관청에서 ‘영주권자가 아닌데 (F2비자 소지자에게) 실수로 장애인 등록증을 내줬다. 미안하다’며 장애인 등록증을 돌려 받은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화교는 영ㆍ유아, 학생도 차별

3세대 화교로 국내 대기업에 재직 중인 회사원 왕모(38)씨의 자녀는 2014년 출생 후 부인의 국적에 따라 한국인으로 등록 됐다. 그러다 2016년부터 자녀 국적을 자신처럼 대만으로 바꿨는데 그러자 정부의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끊겼다. 그때부터 매달 50만원 넘는 돈을 어린이집에 내야 했다. 지난해 도입돼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 역시 화교 아동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외국인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볼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 등은 영주권자가 아닌 일시 체류자인 외국인에게도 아동수당과 보육료 일부를 지원한다. 왕씨는 “아동수당, 보육료 지원이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만을 위한 혜택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면서도 “그렇다면 외국인 과세 기준이 지금과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전국 14곳 정도 남아 있는 초ㆍ중ㆍ고 화교학교들은 국내법상 ‘각종학교’로 등록이 되어 있는 엄연한 학교이지만 정부가 주는 교부금 등 지원이 전혀 없다. 학생 400여명이 다니는 서울 연희동 소재 한국한성화교중학(중ㆍ고등학교)의 우식성(于植盛ㆍ62) 교장은 “한국 정부에서 받는 돈은 전혀 없고, 대만 정부도 교과서 지원만 해준다”며 “학교 지출은 전부 학생들에게 받는 학비로 충당하기 때문에 운영비가 부족해 학교 화장실을 50년째 보수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생 1명이 부담해야 하는 학비가 연간 400만원이 넘고 급식비도 별도로 내야 한다. 국내 초등ㆍ중학교는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고, 올해부터 고교 3학년생도 무상급식 대상이지만 화교학교에는 해당이 안된다. 무상급식의 근거 법인 학교급식법이 화교학교와 같은 각종 학교를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서다. 법에 ‘교육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학교’는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지만 화교 학교 중 아직 인정된 사례는 없다.

취업 문턱도 아직 높다. 3세대 화교로 대학에서 항공운항을 전공하는 하세안(何世安ㆍ22)씨는 “항공사 중에는 한국 국적자만 지원이 가능한 취업 공고가 많다”며 “공무원 임용은 불가능하며 공공기관 취업도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또래 중 귀화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적 바꾸면 되지 않냐’지만…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되지 않냐’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국적 변경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혜택이 가장 절실한 취약계층은 자산 6,000만원 이상을 보유하거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ㆍ지난해 약 3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려야 하는 일반 귀화나 3,000만원 이상 자산을 보유해야 하는 간이 귀화 신청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원해도 국적을 바꾸지 못한다.

왕애려 부회장은 “유씨와 왕씨처럼 어려운 처지의 화교를 알게 된 사회복지사들이 협회에 연락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귀화 신청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 올 때가 종종 있다”며 “하지만 귀화를 하려면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소득층 화교는 귀화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난해서 국적을 바꿔야 하는데, 가난해서 귀화가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 신분 유지가 도움이 되는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가 외국인이어야 자녀가 대학에 외국인 특례입학 지원을 할 수 있는 점은 화교들이 국적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화교학교에서 대만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를 하는 화교들이 한국 학생들과 입시 경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적 변경은 화교로서 정체성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일일 수 있다. 국내 요식업체에서 총괄 이사로 일하는 3세대 화교 왕가흥(王家興ㆍ52)씨는 “나는 99%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화교학교를 다니며 중화권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뿌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대만 국적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사회 일원으로 모범적으로 살아왔음에도 화교임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화교 2세대로 28년간 KBS에서 중국어 방송 원고 집필을 한 국백령(鞠柏嶺ㆍ80) 한성화교협회 고문은 “평생 한국에 기여하며 살아온 화교가 귀화 신청을 하려면 주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추천서를 받아야 하고, 애국가 외우기 등 시험을 쳐야 하는데 노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기분이 나빠서라도 국적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소수자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공존하기 어려운 환경은 다양성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는 “일본인들이 재일(在日) 한국인을 차별한다고 하지만 재일 한국인은 국내 화교와 달리 공무원 임용도 가능하며 거의 차별 없이 복지 혜택도 받는다”면서 “137년간 한국에 살면서 오랜 기간 차별을 견디면서도 납세의 의무를 다하며 사회에 기여해 온 화교들에게 이제는 정당한 대우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재일 한국인에게 부여한 특별 영주권을 한국 화교에도 부여해 내국인과 비슷한 대우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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