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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위조하려는 자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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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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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국 /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중세 유럽은 ‘위조의 시대’였다. 당시의 위조문서는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방대했다. 실제로 프랑스 고대 왕조인 메로베우스 시기에 작성된 문서의 반이 위조문서였다. 문서를 위조한 사람은 주로 성직자들이었고 이들은 위조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의 뜻을 따랐기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중세 최고의 위조문서는 단연코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일 것이다. 이 문서의 핵심 내용은 로마제국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나병을 치료해준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감사의 표시로 로마 서부에 대한 통치권을 교황에게 양도했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중세 교황의 세속 지배권을 뒷받침해주었던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11세기 이후 교황들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의 싸움에서 이 문서를 근거로 교황의 권력이 세속 군주의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서는 8세기경에 위조된 가짜문서였다. 아마도 8세기 무렵 위기에 처한 교황청이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황청은 동로마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 사실상의 독립을 쟁취하고 더 나아가 서유럽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 가짜문서를 위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교회는 교회국가의 근거를 마련해준 이 증여문서를 금과옥조로 여겼고 이 문서를 논박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문서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급기야는 1440년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가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의 위조에 관한 선언>에서 역사적 시대착오, 문헌학적 오류, 논리적 모순이라는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이 문서가 위조임을 밝혔다. 그는 이 위조행위를 범죄, 살인, 재앙으로 규정하고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교회가 이런 엄청난 범죄의 주체이고 그토록 다양한 죄악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교황권을 옹호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교황에 대한 개인적 증오심 때문이 아니라 종교와 진실을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교황청은 발라의 주장이 가짜라면서 책의 출판을 금했고 한술 더 떠서 대대적인 콘스탄티누스 띄우기 작업을 진행했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청 내에 콘스탄티누스와 관련된 역사를 프레스코화로 그릴 것을 명령했다. 이 작업을 맡은 사람은 당시 젊은 신예였던 라파엘로였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그의 제자들이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 결과 ‘콘스탄티누스 방’에는 ‘십자가 계시’ ‘밀비오 다리 전투’ ‘콘스탄티누스의 세례’ ‘로마의 증여’라는 4폭의 웅장한 프레스코 그림이 탄생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근처에 있는 밀비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구름 속에 나타난 십자가의 계시를 받고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최종적으로 로마제국 서부에 대한 통치권을 교황에게 양도하는 허구의 대서사시가 창조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서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문서를 바치고 있는 ‘로마의 증여’는 역사적 사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으며, 게다가 라파엘로의 제자들은 당시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의 얼굴을 교황 실베스테르 1세로 그려 넣기까지 했다.

1517년에 가서야 독일에서 출판될 수 있었던 로렌초 발라의 책자를 나중에 구해서 읽고 충격을 받은 루터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콘스탄티누스 기진장이 위조라는 로렌조 발라의 책자를 손에 넣었습니다. 맙소사, 로마에 깃든 어둠과 사악함이 어느 정도인지! 그런 믿을 수 없고, 어리석고, 뻔뻔한 거짓들이 수세기 동안 존속했을 뿐만 아니라 널리 퍼져 교회법에 편입되어 신앙의 교리가 되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의아해지실 겁니다”라고 위조행위를 개탄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인하고 지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신념에 찬 나치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2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면서 자신이 저지른 ‘인류에 대한 범죄’를 부인했다. 일본의 일부 우익 인사들은 여전히 일제강점기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전쟁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부정과 왜곡과는 품격이 다르게 1985년 당시 서독 대통령이었던 바이츠제커는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우리가 우리 역사를 솔직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그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더욱더 자유로워집니다” “우리 모두는 죄가 있건 없건 또한 젊으나 늙으나 이 과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 과거의 결과를 넘겨받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라면서 과거 나치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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