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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다고 그가 틀렸는가.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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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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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 기자 

   
 

한국에서 수년간 생활한 우리 조선족들에게는 언어표현의 변화가 여러가지 있는 중에 가장 뚜렷한 변화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하고 있거나 ‘다르다’를 ‘틀리다’로 대체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한국어의 특징으로 알고 있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렇게 오용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가 한국에서 생활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일부러 티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한때 한국나들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난중지난사(难中之难事)였으니까.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 공영방송에서도 교정해주며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사물이 같지 않다’는 뜻이고 ‘틀리다’는 판단의 기준이 덧붙여져 ‘옳지 않고 그릇됨’을 나타낸다. 문제는 그저 단어를 헛갈려 쓴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의식형태도 그에 따라 변한다는데 있다. 무의식중에 나와 다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주장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집이요 고집일 뿐이다. 항상 내가 맞고 그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리고 그가 맞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가 옳고 내가 틀렸음을 성실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에 야만 인간은 클 수 있고 인격도야를 이룰 수 있으며 인생은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남을 인정할 줄 아는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상대방을 언제나 내 뜻에 맞게 통째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시비가리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비 걸고 다툼 끝에 이겼다고 해도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적만 만들뿐이다.

알고 보면 개인 지간의 싸움은 물론 인류역사상의 많은 전쟁도 다름을 틀림으로 보고 다툰 데서 발생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불필요한 논쟁은 회피하며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올바른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다. “논쟁이 길어질수록 그것은 쌍방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뜻한다.”고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말했다.


20세기 현대사상의 거두라고 불리는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상대방의 이질성을 상대방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상대방과의 친화를 도모하는 것을 ‘이질성의 포용’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21세기 철학의 화두로 삼았다. 이질성의 포용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필요한데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하거나 오용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틀리다’를 쓰고 있는 것은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이념은 옳고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이념은 틀렸다고 여기는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선현들은 말했다. 틀린 말은 틀린 행동을 만들뿐이다.

어떤 철학자가 ‘+’가 그려진 카드를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수학자는 더하기,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는 십자가,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답했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누구나 자기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답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서로 부정이 아닌 이해와 긍정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이다.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따지며 ‘틀림’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가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상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상대로부터 배울 수 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따로 없다.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며 긴밀히 협동하면서 공존·공생·공영하는 길뿐이다.

우리는 참으로 총명하고 똑똑한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 주장이 세며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만 옳다는 경향이 짙어 시비를 걸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남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배타적이다 보니 영웅을 하나 제대로 만들기도 힘들다. 영웅을 만들어놓고 치켜세우면서 그 주위에서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 더 찬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남은 야심차게 칼을 갈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위정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고 그 동인이 또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다. 허구한 세월 그저 논쟁만 하고 당쟁만 일삼다보니 한번 크게 당했다. 수백 년이 지나도 그 모양이여서 마침내 국운은 기울어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설음도 맛보았다.

나와 다르다고 그가 틀렸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아예 버리자. 지금이라도 도리를 깨달아 큰마음 먹고 응집력을 키우자. 그러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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