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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우리보다 더 탐독한 日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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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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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 논설위원

   
 

1592년 5월 23일 부산 앞바다로 왜선이 몰려왔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적선(敵船)이 90척이라고 보고했다. 경상감사 김수는 400척이라고 했다. 일본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끌고 온 1군 함대는 700척, 군사 1만8700명이었다. 갑작스레 대군을 맞은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곧 2군 2만2000여 명, 3군 1만1000여 명 등 17만여 명이 밀어닥쳤다. 이후 7년간 조선은 아비규환의 전장으로 변했다.

조선이 왜적의 침입에 전혀 대비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성벽을 개축하고 방어진을 다듬었다. 그러나 7년 이상 전쟁을 준비한 일본을 당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정보 부족이 문제였다. 한동안 통신사를 통해 일본 사정을 파악하던 조선은 일본의 전국시대 혼란기인 100여 년 동안 통신사를 파견하지 않아 내부 동향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번역·주해 곁들여 국가적 연구

집권층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싸웠다. 전란을 1년 앞둔 시기에는 동인이 남인·북인으로 갈라졌다. 그해 일본에서 돌아온 통신사는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상반되게 보고했다. 국론은 더 분열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답서에 명나라를 치겠다는 내용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런 잘못을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하기 위해 전시 재상이었던 류성룡이 남긴 책이 ‘징비록(懲毖錄)’이다. 류성룡은 첫 장에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조정의 실책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저술한다”고 썼다. 양국 지휘관의 전략과 전투 형태까지 상세히 기록했다. ‘왜적’ 외에 ‘일본’이라는 국호를 함께 쓰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 1604년 완성된 원고는 1633년에 간행됐다.

‘징비록’은 얼마 뒤 일본에 알려졌고, 1695년 교토에서 출판됐다. 누구나 읽기 쉽게 일본어 훈독까지 곁들여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직을 비하적으로 표현한 ‘관추(關酋·우두머리)’를 ‘관백(關白)’으로 수정한 것 외에는 원문에 충실했다. 일본인들은 이를 통해 조선의 사정을 훤히 꿰뚫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조선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됐다. 일본 사학자들은 예외 없이 이 책을 연구 기반으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때부터 생겼다. 전근대 일본의 최대 국제전쟁에 대한 관심이 ‘징비록’에 투영돼 있다.

우린 禁書 지정…교훈도 못 얻어

1719년 일본 오사카 거리에서 이 책을 발견한 조선통신사 일행은 “국가 기밀이 새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조정은 ‘징비록’의 해외 유출을 금했다. 나라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며 국내에서도 금서(禁書)로 묶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임진왜란의 교훈을 널리 공유하지 못했다. 그 사이 일본은 조선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징비’의 정신을 스스로 다졌다.

일본판 서문의 한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조선인이 나약하여 빨리 패하고 기왓장과 흙이 무너지듯 한 것은 평소 가르치지 않고 방어의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중략) 전쟁을 너무 좋아하는 것과 전쟁을 잊는 것 모두 경계해야 한다. 도요토미 가문은 전쟁을 너무 좋아했기에 망했고, 조선은 전쟁을 잊었기에 망할 뻔했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공세를 보면서 400년 전 ‘징비록’을 다시 떠올린다. 그때처럼 일본의 공격 징후는 여러 번 있었다. 한국 주재 외교관들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전에 한국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까지 했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엔 일본의 부품·소재 수출규제에 관한 21세기 징비록을 써야 할 판이다. 이 또한 무용지물이 될까 두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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