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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기망'을 '로망'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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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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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 논설위원

   
 

24년 전 그러니까 1995년 초여름, 기자는 일본에 있었다. 2주간 도쿄, 고베, 히로시마, 기타큐슈를 기차로, 전철로 다녔다. 사찰과 납골묘를 찾아가 확인한 것은 50여 년 전 숨진 분들의 하얀 유골이 든 상자와 항아리, 사망자 명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 땅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희생된 이들의 발자취를 찾는 시리즈 취재였다. 일본 곳곳의 댐과 발전소, 탄광, 철도엔 하나같이 한국인들의 피와 땀,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그들은 다이너마이트 발파 작업에 몸이 날아갔고, 터널 붕괴로 생매장을 당했고, 누워야만 겨우 몸을 밀어 넣을 수 있는 탄광 굴에서 석탄을 깨다 목숨을 잃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고, “전쟁터에 보내겠다”는 협박에 넘어가고, “황국신민이 되라”는 징용 영장에 끌려간 이들이었다. 일본에 발을 딛자마자 곧바로 가장 위험한 노동 현장에 투입됐다. 태평양전쟁 말기엔 이유 없이 집단 구타당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야 고향은 경상북돈데 나는야 어째서 숯파로 왔느냐/숯을 팔 때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 말만 하며는 몽둥이 맞았네/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소,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후쿠오카현 지쿠호 지역에 구전돼온 ‘조선인 갱부(坑夫)의 시름가’에 당시의 참상이 담겨 있었다. 조선인 갱부들은 ‘채탄 결사대’ ‘가미카제 특공대’로 불리며 암흑의 막장 속으로 돌격해야 했다. 탈출자가 속출하자 일본인 감독들은 길목마다 군대식 초소를 설치하고, 붙잡히면 모진 고문을 가했다.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은 일종의 ‘로망’과 같은 곳이었다.” “징용보다 자발적 모집이 더 많았다.” “대법원 판결은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들까지 보상해주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 한 켠에서 들려오는 주장들이다. 그렇다면 24년 전 기자가 일본에서 목격했던 것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그 유골함들이 히로시마와 후쿠오카의 사찰들에 있었으며, 조선인 위령비들은 왜 세워졌는가. 그 애달픈 시름가는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은 말한다. ① 1941~43년 모집돼 일본에 간 원고들은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조직적인 기망(欺罔·속여 넘김)’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했다. ②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 저금을 해야 했고 ③ 감시받다 탈출 시도가 발각되면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모집’이든, ‘동원’이든, ‘징용’이든 본질은 하나였다. 반인도적 불법행위다. 보통명사화된 그 상징어가 강제징용이다.

어찌하여 ‘기망’을 ‘로망’이라고 말하고, 피해자들의 절규를 가해자의 프로파간다로 대체하고, 현실의 구체적 고통을 허울뿐인 통계로 지우려 하는가. “자원해서 열심히 일한다”며 조선인들에게 ‘지성공(至誠工)’이란 이름을 붙여 강제노동을 은폐했던 전범기업과 다른 게 무엇인가. 지금의 ‘강제징용 부정하기’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부정하기’, ‘5·18 부정하기’와 다르지 않다. 작은 허점과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분명히 존재하는 역사를 부정하고 모욕한다.

24년 전 현지 취재에 도움을 준 이들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강제연행을 조사하는 모임’을 꾸려서 모은 자료들을 전했고, 사찰과 현장으로 안내했다. 차별과 착취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면서 “더 많은 걸 취재해가라”고 격려해줬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찰 승려들은 “왜 조선인 유골을 받느냐”는 주민들 압박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유골을 지켜냈다.

역사 왜곡보다 무서운 역사 부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 서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함께 기억하는 양심의 연대 위에서 새로운 한일관계가 다시 시작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한 투쟁 속에 역사는 더욱 생생해지고 면밀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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