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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정치 그리고 도덕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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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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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요즘 검찰개혁을 둘러싼 심한 갈등이 한국 사회의 모든 것처럼 보일 정도다. 16년 전 이맘때 서초동 검찰청사의 한 취조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끝내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과 언론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크게 판을 키운 끝에 3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을 수 있었던 나를 ‘해방 이후 최대 간첩’으로 만들었다. 그때의 상황을 뒤돌아보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검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검찰개혁이라는 숙제가 그의 본래적인 영역을 벗어나 ‘조국 수호’와 ‘조국 퇴진’이라는 구호 밑에 정권 유지냐 아니면 정권 퇴진이냐를 건 큰 정치투쟁으로 변했다. 정치가 작동해야 할 공간을 대중 동원을 통한 거리의 정치가 대신하는 양상으로 변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갈등이 증폭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계층과 계급이동에 있어서 기회균등과 공정성의 결손 같은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또 통제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한국적인 정보사회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 사태를 판단하는 데는 법, 정치, 도덕이라는 사회작동방식의 전통적인 삼각관계는 물론 심각한 교육 문제와 언론의 현주소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법과 정치, 그리고 도덕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철학과 사회과학에서 줄곧 있어왔다. 특히 근세에 들어서면서 과거 종교나 관습에 의존했던 사회적 가치통합은 많이 약화되었으며 개인과 사회, 도덕과 법의 분화현상도 뚜렷해졌다.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비록 정치적으로는 타격을 받을지언정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정치는 원래 부도덕하고 도덕은 애초부터 정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회적인 통념도 강해졌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독일의 사회학자 루만은 법은 합법인가 아닌가, 정치는 권력을 가졌는가 아닌가, 도덕은 선인가 악인가라는 서로 다른 양가적(兩價的)인 코드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법, 정치 그리고 도덕은 작동원리가 애초부터 다른 체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법철학자 드워킨은 오히려 법, 정치 그리고 도덕의 내적 연결을 강조하면서 법적 규범이 도덕처럼 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의 전체적 목적지향도 법적 형식이 전제하는 결속력 덕택이라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법은 정치와 도덕 간의 연결고리라고 본다. 독일의 법학자 디이터 지몬도 법과 도덕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거부감과 불만이 점증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얼마 전 그의 90세 생일을 맞아 프랑크푸르트대학이 마련한 기념강연에서 하버마스도 법, 정치 그리고 도덕의 분화에 의거한 기능주의적인 사회통합보다는 오히려 정의의 원칙과 같은 규범적 질서가 이성적인 사회를 보장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여러 논의를 염두에 둘 때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는 격렬한 정치적 투쟁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유전무죄’라는 단어처럼 사회에 만연한 법에 대한 냉소, 삭발과 단식투쟁이 여과 없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정치투쟁 행태, ‘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처럼 자의적으로 들이대는 도덕이라는 잣대를 가지고는 법, 정치 그리고 도덕 간의 선순환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장관 임명을 둘러싼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다. 또 정치투쟁에 있어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관행은 어느 사회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가 반쪽이 날 정도로 비난과 증오만이 서로 오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 법이나 정치 그리고 도덕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 정부의 핵심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는 ‘386세대’의 공과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상황은 비록 달랐지만 ‘68세대’에 대하여 비슷한 논의는 독일에서도 있었다. 정치에 과도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매우 공격적인 정치행태를 보여준 이들 세대의 세계관을 전후 독일의 보수주의 철학을 대표했던 아놀드 겔렌은 ‘초도덕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좌파지식인을 ‘입만 가지고 떠드는 녀석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이른바 ‘강남좌파’라고 불리는 집단을 향한 공격이나 비판적인 정서가 한국 사회에도 있음은 충분히 감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정치에서 도덕 문제를 분리시키려는 보수주의자들은 과연 정치 없는 정치가 난무하는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책임으로부터 정말 자유스러울 수가 있는가. 촛불혁명이 왜 일어났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번 검찰개혁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된 배경에는 흡사 물이 흐르는 것처럼 정치와 도덕 사이를 선순환 시켜야 할 법이 제 구실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공정, 불평등 그리고 부패한 정치를 오랫동안 확대 재생산해 온 검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검찰개혁 문제를 ‘조국이냐, 윤석열이냐’라는 식으로 단순 환원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니다. 근대적인 검찰조직과 운영의 시원이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나 이를 뒤따른 독일의 법체계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지금까지 한국 검찰은 행사했다.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굴절시켜온 검찰을 이번에는 반드시 개혁해야만 한다는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해진 배경에 무엇보다도 이같이 막강한 세력이 스스로가 개혁에 나설 의지는 물론 능력도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서초동의 차가운 공안검사실에서 내가 당시 품었던 분노와 뒤섞였던 절망적인 감정이 다시 살아나면서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들어있는 다음 구절을 떠올린다. “스스로 번민하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으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가르쳐주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나머지 세 귀퉁이를 유추하지 못한다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는다.”

검찰개혁이라는 한 귀퉁이가 제기한 숙제를 이번에 풀지 못하면 정치라는 이름 밑에 자행된 그동안의 반인권적인 폭력, 도덕과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점점 잊혀져만 가는 재벌개혁을 포함한 공정한 경제 질서의 수립이라는 나머지 세 귀퉁이 과제 해결도 어려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비운에 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검찰개혁이 담고 있는 시대적 과제와 그의 절박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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