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14 목 18:12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한국 사회에는 없는 것, 통합능력
한겨레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1.0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나는 그 부부를 20년 전에 서울에서 만났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특이하고 비극적이었다. 남자는 김일성대학을 나온 북한의 수재 출신이었다. 그는 1980년대에 유학생으로 소련에 갔다가 한 현지 여성과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북한은 1962년 이후로는 대개의 경우 국제결혼 등을 불허해온 사회다. 결국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는 전자를 택했다. 때마침 소련이 붕괴 과정에 들어가고 그는 서방을 거쳐 서울로 들어와 탈북과 정착의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완벽한 러시아어 구사력과 정보기술(IT) 능력으로 무장한 그는 곧바로 옛소련 출신 엔지니어들을 모아 벤처기업을 만들어 성공으로 이끌었다.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그를 ‘탈북자들에게 모범이자 희망이 되는 인물,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라고 대내외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부의 모습에서는 ‘코리안 드림’ 실현에 대한 기쁨을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남한에서의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었다. 고난의 행군이 끝난 뒤인 그 시절에 들어온 대부분의 탈북자들과 달리 그들은 경제적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북한 사투리가 들리기만 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만 하면 위험하고 이질적인 분자 취급을 하는 배제의 분위기에 깊은 상처를 받은 그들은 더는 남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그들은 ‘귀순자’와 같은 ‘비정상인’으로 취급받지 않고 그저 남들과 다를 게 없는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되어 살기를 원했다. 결국 그들은 머지않아 탈북에 이어 탈남까지 감행해 한 서방 국가에 정착하게 됐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혈통이나 민족 차원에서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쪽에서 그들은 오히려 남한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에서 살았을 때는 남한 사람들의 눈치가 너무 부담되어 주로 같은 탈북자나 옛소련 출신들과만 교제한 그들은, 외국에 나가서야 현지 사회에 통합될 수 있었다.

북한 출신에 대한 한국 사회의 통합 실패를, 오랜 분단과 적대의 영향,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레드 콤플렉스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외부 출신에 대한 사회 통합의 실패는 북한 출신에만 국한되는가? 내가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에서 만난 각종 외부 출신들은 수백명에 이를 것이다. 그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중국 조선족 출신이나 중앙아시아 고려인 출신, 북한 출신들도 있는가 하면, 속칭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대에서 교편을 잡고 상당한 연봉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사는 미국 내지 유럽 출신들도 있었다. 온갖 인권 침해를 당해온 약자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중상층 구성원들도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국적이나 인종 차원에서도 각양각색인 한국 속 외부자들인 그들에게 나타나는 딱 하나뿐인 필수적인 공통점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한국 사회에 대해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며 “내 자녀들도 자자손손 이 땅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한국 사회는 그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에서 ‘교수님’으로 불리며 지가가 매우 높은 부촌에서 살고 선망의 대상인 미국 여권을 소지하는 사람들마저도 “나는 한국의 대학에서 전시품에 불과하다. 한국인 권력자들이 나에게 악감정이 생기거나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는 불안감을 토로할 정도다. 식민 모국에 비견될 만한 영향력을 한국에 미치는 나라에서 온 부유한 고학력자조차도 그렇게 느낀다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연변 아주머니’가 과연 한국 사회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우리는 매우 정당하게 한반도 국가들에 대한 배타주의적 적대감을 부채질하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같은 극우 정객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외부 계통의 주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사회적 배제 차원에서 보면 한국은 오히려 일본에 꽤나 가깝다. 한·일 양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압축적 근대화의 사례로 꼽히는데, 이 두 나라에서 사는 외부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근대 사회다운 개방성이라기보다는 매우 강한 폐쇄성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국과 일본이 산업화된 세계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낮은 사회로 알려진 이유와 같을 것이다. 한·일 양국에서 근대화를 주도해온 것은 보수적 기득권층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근대란 인간의 해방이라기보다는 부국강병이었다. 이 부국강병의 개발주의적 계획 속에서는 양성평등도, 외부자에 대한 개방성도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한·일과 같은 방식의 ‘반동적 근대주의’는 군대나 군대를 빼닮은 국가 관료 기구 등이 사회의 준거집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료 집단은 보통 서로서로 유사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명문대 선후배 네트워크가 장악하게 되는데, 군부대나 중년 남성 위주의, 관직에 잔뼈가 굵어진 명문대 출신 네트워크는 그 속성상 외부인들에게 쉽게 개방될 수 있는 조직들도 아니고 남녀평등을 제대로 실천할 만한 조직들도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근대 사회를 지배해온 또 하나의 주요 조직은 바로 특정 족벌이나 연공서열이 높은 고참 임원들이 운영하는 대기업인데, 그 조직 역시 개방적일 리가 없다. 그런데 배제되는 것은 외국인뿐일까? 사실 극도로 위계서열화되어 있는 한국 내지 일본 식 조직 문화에서는 배제를 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출신 국가나 국적을 불문하고 오히려 소수다. 여성이거나, 학벌이 없거나, 특정 족벌의 구성원이 아니거나, 조직에 막 들어온 막내이거나, 비정규직이라면 배제를 당하거나 각종 괴롭힘이나 개인적 착취의 대상에 오른다. 평등이라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반동적 근대’는 내부자들마저도 한 줄로 세워 그 아래쪽에 속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괴롭히는데, 하물며 외부자들의 신세는 어떻겠는가?

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서열적 사회의 통합 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탈북 행렬 못지않게 탈남 행렬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사랑을 찾아 탈북을 감행한 김일성대학 출신 유학생은, 한국에서 성공을 해도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고 평등과 사회 통합을 찾아 다시 탈남을 해야 했던 것이다. 평등이 없으면, 즉 주류와 같은 경제력이나 학력이 없어도 같은 인간이자 같은 시민, 주민으로 동등하게 대해주는 사회적 관행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외모나 여권 색깔이 다른 사람들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기는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평등, 사회적 서열의식의 파괴는 사회 통합의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고령화와 초저출산의 시대에는 사회 통합, 이민자들이 쉽게 정착해 대대로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의 출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장기 국가 과제가 돼야 한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